내 수저는 참아주세요

희원의 결정

by 수잔

"엄마, 하지 마."

주황색 양념이 묻은 돼지고기 한 점을 희원의 수저 위에 올리던 엄마는 눈을 들어 희원을 쳐다보았다. 응? 뭘 하지 마?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으니까 반찬 올리 지 말라고.


교정 보는 일이 막바지에 달했다. 지겨운 빨간색. 교정을 보는 희원도 빨간색이 지겨웠지만 작가를 생각하니 머릿속에 온통 빨갛게 달아오른 작가의 얼굴에 섬뜩하다. 희원은 남이 쓴 글에 교정도 보지만 자신도 글을 쓰는 입장이기에 작가의 기분을 알고 있다. 원래도 입맛이 없는데 하는 일도 입맛 없는 일이다. 왜 그렇게 길게 써야 하니?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받침, 띄어쓰기 왜 그렇게 엉망이야! 정리하고, 간추리고, 핵심만! 주제만! 담백하게! 그러면 되잖아. 벌써 희원은 취기에 속내를 꺼내고 있었다. 여고를 다닐 때, 3인방 친구 중에 한 명인 기원을 만나 소주와 맥주를 섞어 몇 잔 째 들이키는 중이다. 벌써 결혼을 해서 기원은 쌍둥이를 낳아 영어유치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기원이 결혼을 하고 쌍둥이가 아직 돌이 되기 전이었다. 희원은 기원의 집에 가서 의외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인 기원에게 당시에는 몰랐던 클래식한 면모가 있다는 것을 기원이 꾸민 신혼집에서 발견했다. 30평대 아파트에 하얀 실크벽지를 끊김 없이 바른 데다 여기저기 배치한 장식품에 특히 눈길이 갔다. 예전, 3인의 조각가 전시회를 소개하는 월간미술 한 꼭지를 쓰느라 별로 관심도 없는 조각상들을 주의 깊게 살필 기회가 있었는데, 기원에 집에 있던 조각상들에서도 그때 풍기던 진중함이 느껴졌다. 기원과 오래간만에 갖는 식사자리가 편했던지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던 중이었다. 말도 많이 주고받고 안주도 부실했던 터라 김치찌개에 밥 두 공기를 추가로 시켰다. 대뜸 기원이 많이 먹어. 하며 한 숟가락보다 약간 더 많은 양을 퍼서 희원의 밥그릇에 얹어놓았다. 희원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하지 마. 기원은 눈을 들어 희원을 보았다. 응? 뭘 하지 마?


희원이 세 번째 수필집을 출간했을 무렵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첫 번째 책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을 병행하며 출간했고 두 번째 수필집을 계약하기로 했을 때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출판사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사귀던 중이었던 희원은 일로는 종종 다투는 일이 잦았고 1년을 만나다 1년 동안 헤어지고 다시 만나 1년을 사귄 뒤에 결혼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 결혼식 들러리는 희원의 3인방 친구인 기원과 세영이 도와주었다. 야외촬영도 아침 일찍 시작된 예식 준비도 3인방이 함께 했다. 기원의 아이는 남편과 함께 집에 있다 예식장에서 합류하기로 했고 세영은 그런 면에서 자유로웠다. 희원의 지인들이 쏟아져 들어와 축하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원과 세영은 지인들에게 떠밀려 밖으로 밀려났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른 목을 축인 기원이 무언가 떠올리며 말했다. 세영아, 예전에 좀 웃긴 일 있었다. 뭔데? 누구랑? 희원이랑.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 희원이 진짜 살벌했잖아. 응? 뭐래. 진짜? 뭐가 살벌해. 그게 언젠지는 한참 지나서 기억 안 나는데, 희원이랑 같이 술 먹다 밥을 시켰는데 내가 희원이 밥그릇에 내 밥을 덜어준 거야. 왜? 많아서? 어, 아니 아니. 그냥 희원이 많이 먹으라고. 근데 희원이가 뭐라 그랬는지 알아? 갑자기, 하지 마. 그러는 거야. 진짜 진지하게. 술이 확깬 얼굴로.


자주 외식을 하는 희원과 남편은 둘 다 입이 까탈스럽지는 않았지만 남편 쪽이 식사의 질과 양에 있어 희원보다는 예민했다. 희원은 마감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도 교정일이 밀려 저녁은 집에서 간단히 배달로 주문했다. 그 사이 각자 밤샘작업을 위해 미리 처리해야 하는 집안일을 마무리하던 중 배달된 음식이 도착해 일사불란하게 식탁에 차리고 한 캔씩의 맥주를 따 자리에 앉았다. 일에 대한 대화는 되도록 하지 않는 희원과 남편은 각자의 방식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남편은 반정도의 밥을 국에 먼저 말아먹고, 희원은 국안에 있는 건더기를 소스에 찍어 먹다 밥을 말아먹었다. 허기가 지나가자 희원과 남편은 관심거리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반찬 한 개를 집어 희원의 숟가락 위에 올렸다. 이 집 이거 맛있더라. 먹어 봐. 희원이 숟가락을 놓고 말했다. 하지 마. 남편이 눈을 들어 희원을 보며 말했다. 응? 뭘 하지 마? 반찬 올리는 거, 내 밥 위에. 내가 알아서 먹을게.


희원이 꿈을 꿨다. 누군가 희원의 숟가락 위에 끊김 없이 반찬을 올려놓았다. 희원은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꿈이었는지 꿈을 깨서 말한 건지 생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 나왔다. 자기 입도 아닌 다른 이의 입 속에 무언가를 넣는 일이 그렇게 쉬워? 밥조차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면서 먹는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야? 내가 숟가락을 집어드는 순간에 내려야 하는 결정을 당신들이 왜 낚아채 가는지, 내가 온전히 내 입에 들어갈 것들을 결정하겠다는데 왜 그렇게들 방해하는 거야? 당신들 일은 당신들이 결정하잖아. 잘 생각해 봐, 입이야, 입이라고. 넣고 싶을 때 내가 된다고 한 것들만 넣을 거야. 신경질이 잔뜩 난 희원이 꿈에서 완전히 깬 후에도 분이 덜 풀려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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