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빌딩 한종녀와 세 마리 아기 비둘기
주말은 제외하더라도 두어 번은 가까운 마트로 하루 이틀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서간빌딩을 지나야 했다. 부자연스러운 외관만큼 자극적인 장면을 보게 된 것은 햇빛이 강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한여름의 일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에 각인될 만큼 자극적이었다. 늘 닫혀있던 4층 창가로 한 마리의 비둘기가 하강하여 들어갔다. 그 뒤로 줄지어 비둘기들이 날아들었는데 이동하는 기러기 무리 떼로 보일 정도였다. 한 번의 이미지도 무척이나 놀랐지만 그 후로 그 일은 매번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비둘기 떼가 맛집을 찾아서 날아들었다 나갔다 하는 것 같았다. 줄지어 늘어선 행렬이 맛집 앞을 서성이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항상 닫혀있던 창이 열린 것도 신기했지만 어떻게 비둘기 손님들을 성황리에 끌어들이고 있는지 재주에 한번 더 놀랐다.
4층 창문 안에서 벌어지는 비둘기들의 건하한 잔치와 걸출한 주인장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지만 줄을 서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간빌딩.
6층으로 새로 지어진 주상복합빌딩의 외모는 낡은 인상을 가졌다. 1층의 고깃집 규모로 보아 꽤나 덩치가 큰 빌딩으로, 정면에서 볼 때 갖는 세련된 인상과 달리 모퉁이를 돌면 보이는 엑스자 모양의 낡은 검정 나무로 창가에 멋을 낸 모습이 새 건물이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자연스럽지 못하고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속초에서 서울로 이사 온 지 2년이 되었다. 이 빌딩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늘, 시각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높은 빌딩 전체가 빛이 바랜 진하고 붉은기가 도는 베이지색으로 뒤덮여 주변의 낮은 빌라들과는 경관이 어울리지 않았다. 정문의 반대쪽엔 은빛으로 빛나는 각이 진 거대한 연통이 빌딩의 한 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창이 난 쪽은 도로를 중심으로 정면과 오른쪽, 두 면뿐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런대로 평범하더라도 골목에서 보이는 창문에서 느껴지는 늙고 깊숙한 어두움은 서간빌딩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1층과 2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정집이었다. 언제나 닫힌 4층 창문 뒤로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한동안 성행하던 비둘기 맛집에 손님이 뚝 끊겼다. 잘되던 장사가 망하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도,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어디로 갔을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 것인가 별의별 생각과 상상이 알지도 못하는 주인에게로 쏠리게 된다. 이유를 알게 된 건, 집에서 멀지 않은 차도를 한 개 사이에 둔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는 h덕분이었다. 부동산중개소라는 곳이 미용실만큼이나 소문에 빠른 곳이라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훤했다.
서간빌딩 401호에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넷째 아들 내외가 살았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전쟁통에 학도병으로 죽었고 할머니가 편애하던 둘째 아들은 온몸에 퍼진 피부병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셋째 딸은 선교지인 캐나다로 떠났다. 넷째 부부가 양고기집을 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가게도 집도 대출금에 묶여 억지로 노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지독하게 매사에 아끼는 버릇이 있어 식탁 위에 떨어진 빵가루, 과자가루, 반찬들을 손으로 긁어모아 옷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있었다. 곱슬거리는 흰머리가 머리 전체를 감싸고 허리가 직각으로 휜 할머니의 정신을 지배하는 광증은 일반적인 방법과 상식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받아들이기에 섬뜩한 것이었다. 옷주머니 속에 부스러기들을 방으로 가져가 한 통에 담아 모았다.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한종녀의 유일한 취미는 부스러기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창문뒤에 숨어 그림자가 되어버린 102세 한종녀의 창가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한종녀에게 이 한 마리의 비둘기는 영적이었다. 102세 한종녀의 마지막 시간에 신이 보낸 영혼의 축복이며 계시였다. 한종녀는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음식물의 잔해를 말리고 빻아 신이 보낸 한 마리의 영혼을 정성스레 보살폈다. 한 마리로 시작된 손님의 영적체험은 입소문을 타 몇 십 마리의 비둘기들과 그들의 파트너를 불러 모으고 알을 낳아 한종녀에게 손주를 안겨주었다. 처음 두 개의 알을 낳은 어미새는 이후 몇 주 간격으로 한 개의 알을 또다시 낳았다. 처음 낳은 두 개의 알에서 부화한 새끼 비둘기와 나중에 낳은 막내까지 부화하여 한종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한종녀는 자신의 손으로 받은 아기 비둘기 세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조리 쫓아버렸다. 세 마리의 아기 비둘기를 위해 방을 깨끗이 하고 부스러기를 바싹 말려 먹이고 창문을 걸어 잠갔다.
서간빌딩의 주인 한종녀할머니.
새로 지어진 6층의 빌딩 속에서 세 마리의 아기 비둘기와 영원히 잠들었다. 잠긴 창문틈 사이로 안타깝게 새끼들을 부르는 엄마 비둘기의 목소리는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h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