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 큰 분류로 더 간단하게 구분하기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나만의 FAQ 리스트가 생기곤 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바로 숫자에 대한 질문이다. 특히 입문이나 초급 단계의 학생들은 열에 아홉은 꼭 이 질문을 하곤 한다.
“일, 이, 삼, 사… 하고 하나, 둘, 셋, 넷…은 어떻게 달라요?”
한국어 과외를 희망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도 똑같이 이 질문을 던져보는데, 놀랍게도 절반 정도만 답을 한다. 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학생들에게 숫자를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로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지 큰 틀에서 묶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한자어 숫자 ‘일, 이, 삼, 사…’는 전화번호, 버스 번호, 날짜, 금액 등에 쓰이고, 순우리말 숫자 ‘하나, 둘, 셋, 넷…’은 커피 한 잔, 사람 한 명 같이 셀 때 쓰인다고 하자. 하지만 이렇게 세세한 경우를 알려주면 다른 경우에 능동적으로 숫자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번 50% 확률에 기대야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숫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큰 덩어리로 묶어서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쉽게 말해, 한자어 숫자는 ‘번호’를 말할 때, 순우리말 숫자는 ‘개수’를 셀 때 쓴다고 정리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위에서 언급한 전화번호, 버스 번호는 물론 지하철 노선이나 출구 번호까지 모두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커피 한 잔, 두 잔, 사람 한 명, 두 명처럼 물건이나 사람의 수를 셀 때는 순우리말 숫자를 사용하는 것도 이해하기 쉽다. 여기서 더 나아가, 수를 셀 때는 단위와 함께 쓰이며 이는 물건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것도 알려주는 것이다. 처음엔 단위가 너무 많아서 질려 하지만, 개, 잔, 명, 분 등 자주 쓰는 단위 위주로 알려주면 금방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큰 틀을 먼저 잡아준 다음, 좀 더 다양한 예를 하나씩 덧붙여 주는 게 좋다. 예를 들면 날짜와 돈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기간이나 경험의 횟수는 순우리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학생들이 특히 헷갈려하는 부분이 바로 1월, 2월, 3월처럼 ‘월’을 나타내는 것과 한 달, 두 달, 세 달처럼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꼭 짚어줘야 한다.
이렇게 숫자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의 머릿속이 한결 정리될 것이다. 물론 다른 예시도 많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알려주기보다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지금까지는 쓰임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만 이야기했지만, 두 숫자 체계를 함께 쓰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혹시 알고 있는가? 사실 나조차도 학생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에는 한자어와 순우리말이 공존한다. ‘시’는 순우리말, ‘분’과 ‘초’는 한자어를 사용한다. 대체 왜 그러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학생들에게 이유 대신 이렇게 말한다.
마치 해와 달처럼, 닮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한자어 숫자와 순우리말 숫자에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주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