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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과 한가족이 되는 '소규모 갤러리' 어떤가요?

#15 프놈펜 갤러리스트 미술관

by 향기나
제2의 고흐, 피카소를 꿈꾸며 지구촌 곳곳에서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보다 엉뚱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국제개발협력기구 캄보디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프놈펜을 1주일간 여행하였다. 미술관도 꼭 들러 캄보디아의 예술을 보려고 했는데 프놈펜에는 딱히 큰 미술관이 없었다. 대신 박물관과 작은 갤러리와 아트 팩토리, 프놈펜 왕립미술대학을 구경하였다.


국립 캄보디아 박물관은 캄보디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과 유산을 전시하는 곳으로, 약 1,80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관의 역할을 하며 주로 조각품들이 많았다.


캄보디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며, 웃는 표정과 우아한 형태가 독특한 예술적 미를 보여 주는 서메본 청동상, 초기 캄보디아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프놈다 삼위일체인 비슈누, 라마가 있다.


비슈누 신상은 힌두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종교적 의미를 지닌 조각상이다. 비슈누는 우주를 창조하고, 보호하며, 변형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최고 신이다.


라마는 힌두교에서 우주의 질서와 정의를 수호하는 이상적인 왕이자 비슈누 신의 주요 화신이다.


그 외에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석조, 청동, 목각, 도자기 작품들이 조금 있었다.


내가 찾은 The Gallerists-Contemporary Art Gallery는 현대아트 중심의 소규모 갤러리로 신예 작가와 실험적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있었다.

The Gallerists

그중 맘에 드는 것은 캄보디아 출신 1971년생 누 사리(Nou Sary) 작품이었다.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프놈펜 왕립미술대학에서 순수 미술 전공하였다. 프랑스에 유학하여 회화, 조각, 판화, 설치미술,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멀티 아티스트였다.

그는 캄보디아 전통 농촌 풍경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며 삶의 리듬과 자연의 조화,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아 표현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같다.



프놈펜 시내를 전망하려고 올라간 바타낙 캐피털 타워(Rosewood Phnom Penh 호텔 35층)의 Art Gallery에서도 Nou Sary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반가웠다. 모두 추수와 농촌에 관련된 그의 특색이 나타나는 그림이었다.


또 한 명의 젊은 작가 찬 다니(Chan Dany)는 캄보디아 프놈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로, 전통 크메르 장식 기법(kbach rachana)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Reyum Art School, 프랑스 국제학교 등에서 교수 활동로도 활동하는 그는 연필깎이날과 접착제를 사용하여 전통 장식 문양을 고안해 낸다.


크밧라차나(Kbach Rachana) 기법은 고대 크메르 문화의 유기적 패턴인 연꽃잎, 물고기 알, 소 이빨 형태 등을 현대적으로 활용한다. 작품 대부분이 연필깎이날(pencil shavings)을 나무판이나 보드 위에 정교하게 붙여 제작되며, 멀리서 보면 마치 전통 자수나 태피스트리처럼 보였다. 정성과 노력에 감탄했다.


그의 작품 역시 바타낙 캐피털 타워 꼭대기 층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캄보디아에서 유명한 작가인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어 이곳저곳에서 그림을 발견하니 온 지구가 한 가족같이 느껴졌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세상이 점점 좁아져 전 세계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아졌다. 나에게도 다른 지구촌이지만 한가족이 된 사람들이 있다.


1.

딸이 대학원 시절 갑자기 인턴을 신청해 OECD 본부가 있는 프랑스로 떠났다. 거기에서 일할 때 같은 share house에 살던 이탈리아 청년 파비오.

언어학이 전공인 파비오는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소르본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딸의 옆 방에 젊은 외국인 총각이 산다기에 내심 걱정이 되어 물으니 동성연애자라고 걱정하지 말란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효자인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2주간 한국여행을 왔다. 나는 공항에서 픽업하여 우리 집에서 이틀간 머물며 함께 식사도 하고 딸이 서울 구경도 시켜줬다. 담배를 피우는 그의 엄마 아르만다는 아파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하니 나에게 손짓 발짓하며 내려가잔다. 골초인 그녀를 따라 현관 밖으로 내려가기를 수십 번, 그때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를 계속 내게 무어라 말했다. 나는 연신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계속 알지도 못하는 말로 묻기에. 서로 각자의 언어로 얘기했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러스한 그의 부모님 마르코와 아르만다 덕분에 말은 안 통해도 웃을 일이 많았다.


우리나라 시골구경에 관심이 많으셔서 전라도를 보고 싶다고 내려가서 금산사에서 템플스테이도 하시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 우리에게 보내셨다. 공항에서 배웅할 때 알프스 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고 꼭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직장도 다니고, 코로나도 시작되어 여태 만나러 가지 못하고 있다.


2.

아들이 중학교 때 인천과 키타큐슈 자매도시 행사로 키타큐슈에서 방문한 학생을 홈스테이 해 주고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행사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 했던 학생은 재일교포 3세 김충사였다. 아들보다 한 살 아래인 그는 부모님 덕분에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충사의 어머니는 두 아들이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 알게 해 주려고 한국여행도 자주 하고 한국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충사 어머니는 룸메였던 우리 아들을 엄청 좋아하셔서 한국에 오시면 꼭 만나고 아들도 일본을 자주 가서 충사 가족들과 만났다. 십여 년이 지나 충사네 가족이 일본에서 놀러 와 강남 가로수길에서 만나 아들 회사구경도 하고 저녁에 술 한잔도 나누며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재일교포 2세인 어머님은 우리말을 잘하시지만 3세인 충사와 종사는 우리말이 서툴러 영어나 일어로 소통한다. 아들이 모국어를 빨리 익혔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셨다. 치의대를 다니는 충사와 종사는 국가시험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은 공부에 올인해야 해서 가족여행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치과의사이신 김승광아버님도 한국인들을 위한 무료진료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시며 애국심을 발휘하신다. 한국에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카톡으로 걱정을 보태시던 충사 어머니는 시험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곤 하셨다. 지금은 두 아들 모두 치의대에 합격해서 근무 중이다.



3.

내가 강화에서 근무할 때 '야리바브리지보칸'이라는 긴 이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영어 원어민강사가 있었다. 딸 나이의 원어민이라 타국에 와서 외롭게 살고 있는 리바를 잘 챙겨주고 싶었다. 월요일이면 근무일지와 주간 교육계획서를 짜서 결재 받으러 와서는 주말에 홍대에 가서 놀다 왔다 하고, 옆 학교 원어민과 여행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1년 간 안 되는 영어로 떠듬떠듬 수다하며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계약이 만료되면 아부다비에 가서 일을 할 거라고 나보고 추천서를 써 달랜다. 평소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기에 딸의 도움으로 멋진 추천서를 써 주었다.


리바가 떠나기 전 인천으로 초대해서 구경도 시키고 월미도에 가서 놀이기구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바는 얼굴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누구보다도 한국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한가족이었다. 어디에 가든, 어느 곳에 있던 리바가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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