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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Oct 26. 2024

꽃양귀비 - 이토록 얇은 꽃잎이 또 이토록 보드랍다 -




         

밤, 텃밭 주변에 양귀비 꽃밭이 있었다. 양귀비꽃을 이렇게 많이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꽃잎을 만져보았다. 꽃잎을 만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꽃잎은 정말이지 보드랍다. 양귀비꽃은 유독 더 보드라운 것 같다. 꽃잎을 만지면 서늘하지만 촉촉한 보들보들함이 전달된다. 약간은 서늘한 부드러움이 손끝에 감긴다. 이 서늘함이 바로 꽃잎의 수분을 결정하고 있는 것일 거다. 이토록 얇은 꽃잎이 또 이토록 보드랍다. 붉디붉은 꽃잎은 멀리서 보면 이토록 양귀비 꽃잎이 얇음을 알 수 없다.     


꽃잎에 잔주름이 형성되어 있고 그 잔주름이 꽃잎을 프릴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프릴을 이룬 꽃잎들이 겹겹으로 러플을 이루면 꽃이 더 크고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얇디얇은 원단을 주름잡아 겹겹이 에워싸서 풍성하게 부풀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풍성해진 붉은 꽃잎에 빛이 반사되자 오히려 그 빛은 꽃잎에 두께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 두께 감을 주는 반사광은 반들거리는 광택은 아니었다. 그것은 윤택이었다. 윤택함은 빛을 받자 순간적으로 발산되는 빛이다. 빛나는 그만큼 양귀비 꽃잎은 윤기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윤기는 서늘한 촉촉함에서 생겨난 것이다. 수분이다. 그 윤기가 빛을 받자 광택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빛을 받아 빛나는 양귀비 꽃잎의 표면은 손가락으로 만지면 단단할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표면은 금속이 만들어내는 광택의 표면은 아니다. 금세 이지러질 것 같은 얇은 실크 같은 윤택함에 의해 발산되는 빛이다. 손가락으로 양귀비 꽃잎을 감촉해보지 않았다면 양귀비 꽃잎의 감촉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찍은 후 확인할 때에도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붉디붉은 빛깔은 조명 빛을 튕겨 버린다. 아니면 조명 빛을 먹어 버린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붉은색은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색 단면 전체가 평면화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직접 조명보다 간접 조명이 붉은색에는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나의 조명기사에게도 양귀비 꽃잎을 만져 보라고 말했다.     

"비단 같다..."     


아주 얇은 비단 직물 같은 느낌의 양귀비 꽃잎은 고혹적인 붉은 빛깔이다. 밤이라서 붉은 양귀비와 초록의 줄기와 잎들은 상당히 선명한 색상차이를 드러낸다. 어슴푸레한 시간이 만들어 내는 그 느낌은 붉은 빛깔은 더 붉게, 초록 잎은 흰 물감을 섞은 형태로 약간은 불투명한 초록이 된 듯이 보이게 하였다.     


사진에서는 더 그 느낌을 부각하여 보았다. 어디서 보았더라, 이런 느낌, 이런 느낌은 오래된 서재의 빛깔이기도 하였다. 모든 빛이 숨고 아주 옅은 빛만이 광원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하는 그런 어둑한 상태에서의 사물이 드러나는 풍경. 렘브란트적이기도 하는 그 어둑한 상태에서의 좇게 되는 광원.     


양귀비를 찍은 것인지 색채대비를 찍은 것인지 사물의 형태를 찍은 것인지 붉은 빛깔을 찍은 것인지 아니면 그때의 느낌을 찍은 것인지는 복합적으로 아리송하다. 그 감각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초록이라는 빛깔이 없었다면 양귀비의 고혹감도 없을 것이라고.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숨겨짐의 빛, 그 빛이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고.               







*프릴 frill : 잔 주름을 잡은 장식 천

*러플 ruffle : 큼직큼직한 물결 모양의 주름 장식/ 프릴과 비슷하나, 한쪽은 직선이고 다른 한쪽만 주름을 잡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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