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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팅 직독직해 13. 기업 이력서 양식에도 갑질?

채용이란 본질에 충실히 하는 고용 문화의 정착 시급해


기업이 다음 해의 사업계획을 세우고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추천해달라는 채용 의뢰가 가끔 있다.


기업이 요구하는 JD에 맞춰 고객사와의 신의성실 원칙을 쫓아야하는 '을'의 입장에서 헤드헌터는 고객사는 물론, 후보자의 의지에 따라 명암이 교차하는 '을의 을'에 다름없다.


후보자가 타 서치펌과 동시 진행하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때도 있고,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지원을 포기하거나 후보자가 메일로 내던진 이력서의 대필을 불사하고라도 석세스(채용 성과)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채용 상세 요강(Job Description)에서 국외 법인에 지사를 새로 설립하거나 국내에 자회사를 두는 기업은 새 조직을 총괄 운영해줄 CEO나 임원을 찾는 것인데, 직책이 직책이니만큼 후보자가 헤드헌팅 회사의 표준이력서를 따를 리 만무하다.



후보자에게 이력서를 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성과를 내려는 헤드헌터에게는 기업이 지정한 양식에 맞춰 후보자의 이력과 경력을 A부터 Z까지 옮겨 작성하며 자발적인 순종 의식을 치르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 아쉬운 사람이 굴을 판다는 격언처럼 그럴 때마다 후보자가 툭 던진 이력서를 JD와 기업 인사 담당자의 기호에 따라 받아 이력서 양식에 대필하듯 옮겨 써서 추천을 진행한다.


구직 중인 후보자에겐 시간 여력이 있지만 급한 요청 건일 때, 바쁜 직무를 맡아 재직 중인 후보자의 이직 추천이나 대표이사 추천 과정에선 기업이 지정하는 고유의 양식에 시간을 할애해 이력서를 옮길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기업 가운데, MS 워드가 표준화된 헤드헌팅 회사의 양식이 아닌 자사 고유의 양식에 따라 엑셀이나 한글 이력서 양식을 고수하는 기업일 경우, 이력서 작성 작업에만 반나절을 허비하기도 해 다른 포지선의 코웍 요청이 와도 엄두를 못 낸다.



더욱이, 채용 기업의 JD에는 연봉 수준이나 예산 규모가 커서인지 몰라도 실무 담당자 채용 의뢰와 달리 신규 사업과 유관한 임원급 경력자를 찾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자사의 이력서 양식을 채택하거나 법인 홈페이지의 채용코너를 통해 입사지원서를 받는 기업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후보자들이 취업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 내용을 복사해 붙여넣기를 하는 획일화된 지원서로는 자사에 필요한 인재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어 분별력을 키우기 위함일 것이다.


국내의 한 유명 홍보대행사는 자사의 이력서 양식에 기업의 특성을 반영한 자소서 문항에 더해 주관식 서술 문제를 추가해 에세이 형식으로 제출하도록 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후보자의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본적, 가족 관계, 심지어 가족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오픈된 포지션의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도 계약직을 뽑을 때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에피소드처럼 면접 전형에서 압박 면접을 구실로 후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굴욕적인 기분을 느끼게까지 한다.


기업이 이력서를 쓸때부터 인권 침해의 우려를 낳으면서까지 후보자에게 입사 전부터 기업문화에 맞추라는 갑질처럼 느껴지는 이런 형식을 채택하는 이유가 뭘까.


고유의 양식을 버리지 못하는 타성일지, 아니면 수직적인 기업문화를 상징하는 메타포를 통해 입사 전부터 후보자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인지 궁금해진다.


개인정보보호의 이슈화에 따른 불법적인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구직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톡톡에 '표준이력서 법제화'가 제안되기도 했다.



이에 국회는 직무 중심의 학력, 출신 지역,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이 담긴 서류 제출을 금지하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따른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에서는 기업이 '갑'의 위치를 이용해 신용정보제공동의서나 희망 연봉 기재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블라인드 채용'을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 부문 취업절차에서 출신 지역·가족관계·학력 신체조건 등에 차별을 없애기로 했다.


법제화에 따라 공공 부문의 채용 관례가 점차 변화하면 채용과 연관된 민간 부문에서도 갑질 논란이 되는 오랜 병폐도 개선되길 바란다. 인재 채용이란 본질에 충실히 하는 고용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관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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