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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연루된 사람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조형근, 2024)를 읽고

by 이연미 Jan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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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근 역사사회학자가 쓴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한겨레출판, 2024)의 제목을 듣는 순간, 예전에 읽었던 리차드 플래너건의 장편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문학동네, 2018)이 떠올랐다.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의 배경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태국-버마 철도건설 현장이며,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 더위와 전염병에 의해 죽어가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쟁포로들 사이에 ‘조선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가 낯익은 한글 이름 ‘최상민’을 마주쳤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죽음의 철도’ 건설 현장에 조선인이 있었다고? 그것도 건설을 위한 노역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을 대신해 포로를 감시하고 구타하는 임무를 맡아 행했다고? 그때 의문이 들어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고 알게 됐다. 일제에 의해 징병, 징용된 조선인 중에 일본군의 손발이 되어 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에는 더욱 구체적인 자료들이 제시된다. 일본은 26만 명에 이르는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서 인력을 모집했다. 몇 푼의 돈을 벌어보겠다고 자원한 이들도 있었지만, 지목되어 강제로 끌려간 사례도 많았다. 이 철도 공사 현장에만 ‘최대 1,000명의 조선인 포로감시원’(p.55)이 배치됐다. 종전 후 B, C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전범 재판을 받은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129명, 사형된 이가 14명이었다고 한다. 포로감시원 중 일부는 영국인 포로 생존자 알리스터 어쿼트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것처럼 특별히 가학적이었고, 일부는 일본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가 처벌당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질식의 고통을 호소하는 포로들을 위해 이송 열차의 문을 살짝 열어두는 작은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가해자보다 더 폭력적인 가해자부터 적극적인 협력자, 소극적인 폭력 거부자, 양심적인 저항자까지 그 속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었다. 저자는 실제로 포로감시원이었다가 전범으로 지목되어 형을 살아야 했던 이학래와 이영길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중첩된 운명의 희생자였다’(p.61)     


   다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로 돌아오면, 리차드 플래너건은 소설의 끝부분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받은 포로감시원 최상민의 심경을 꽤 상세하게 묘사한다. ‘우리의 행동이 모두 천황의 의지를 따른 것에 불과하다면, 천황은 왜 아직도 자유의 몸인가? 미국인들은 왜 천황을 지지하면서 우리는 교수대에 세우는가? 우리는 그저 천황의 도구였을 뿐인데.’(p.396) 처벌이 억울했던 그는 ‘식량이나 약이 없는 것’은, ‘말라리아나 콜레라가 돌아다니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맡은 일을 했다’(p.400)고 항변한다. 또 매달 지급되었어야 마땅한 봉급을 이 년 전부터 구경한 적이 없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사형은 집행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지휘관이었던 나카무라 소령은 역사의 심판을 요령 있게 빠져나가 개명한 후 일본에서 안락한 삶을 산다. 연합군 포로 생존자들이 고국에 돌아간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며 비참한 삶을 사는 것과 대조된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 우리의 심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역사의 승자와 패자가 묘하게 어긋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의 나머지 에피소드들에도 이처럼 역사에 연루된 이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일제강점기 대동아 스타였던 리샹란은 패전 후 야마구치 요시코로 두 번째 인생을 살았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기금을 마련했지만, 국가의 범죄를 축소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3.1 운동에 참가하고 여성 해방에 헌신했던 박인덕은 전쟁기에 친일파로 변절했다. 독립운동의 공이 친일의 과에 덮였다. 손기정의 베를린 마라톤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올림피아> 덕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나치 선전영화를 위해 사용했던 나치 ‘동조자’였다. 패전 후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무릇 인간이란 일관성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누구의 인생도 단순하게 요약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삶을 살아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에 연루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져야 할 몫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 ‘연루됨의 윤리’(p,10)라고 말한다. 책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책임’ 두 글자에 내포된 의미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온다.     


‘작은 사람’이라고 해서 역사의 책임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아니 작은 사람이야말로 역사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성숙이 시작될 것이다.(p.270)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조형근, 한겨레출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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