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우연과 인연이 스민 거울 앞으로
몇 해 전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한 유명 래퍼가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고향을 동료 연예인들에게 소개해 주는 장면에 그대로 사로잡혔다. 그곳에서 그는 20여 년 전,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이 되어주었던 라이브 클럽 사장님을 마주하게 된다. 사장님과의 뭉클한 재회에 이어, 체구가 유독 작은 중학생이었던 그에게 두 배의 콜라를 리필해 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도록 배려해 주었던 아르바이트생 누나도 등장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유명 래퍼가 그녀를 도통 기억해 내지 못해 미안함의 눈물을 흘렸던 것보다도, 그 잊힘조차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였던, 그녀의 눈빛과 행동이었다.
우리는 그녀처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며 타인과 유대한다.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함께 공간을 차지하며, 그곳의 공기를 공유하고, 때때로 그들이 내비치는 열망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깨뜨리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헛된 꿈처럼 보일지라도.
삶의 한 단면에서 충실하게 행했던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가 도움을 준 이들에게 후일 어떤 보답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 유대의 순간을 뒤로하고, 다음 이정표를 향해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도움을 주었든, 도움을 받았든,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이었건, 쓰라린 멍울로 남았건, 이 세계의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모든 것은 과정으로 존재하며, 곧 과거가 된다.
내가 오늘의 나만큼 나다워질 수 있었던 건, 이제껏 걸어온 기나긴 길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마다 각자의 깜냥대로 진실하게 서로를 대했던 '우리' 때문이다. 많은 사람 속에서 잊히고, 기억되고, 기억하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며 수천수만의 접점을 거친 끝에, 우리는 저마다의 '나다움'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나다운 게 대체 뭔데?’
이 한마디의 읍소는 어쩌면 우리 생에 끝나지 않을 질문일 것이다. '나다움'의 큰 틀은 내 주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 곧 내가 몸담은 사회가 만들어주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정의하고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각자가 할 몫이다. 내가 가장 행복한 '나 다움'을 지니고 있던 시간, 또한 그렇지 못한 미숙함을 지니고 있던 시간을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회상하면 나 역시 미안함이 앞서고, 막연한 고마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당연히 그들을 다 기억할 수도, 보답할 수도, 잘못했던 것들을 만회할 수도 없지만 그때 각자의 나다움으로 그 자리에 있어 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이만치 다듬어질 수 있었다.
조금은 더 타인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내가 되기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연쇄작용이 있었다. 이 거대한 연쇄작용이 어디서 어떻게 이어져 나에게 닿았는지, 자세하게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결국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일들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도 '각자 자신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나의 현재를 공유하고 있는 동료들, 가족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들까지, 매일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존재들. 그 존재들이 '그들 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또한 더욱 듬직하고 단단한 나다움을 키워 가려한다. 언제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연쇄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여름 밤 입속을 얼얼하게 하는 커피아이스크림과 맥주 한 캔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오늘 하루만큼 나는 또 나다워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호하던 그림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나를 추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