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쉴새없이 움직이던 시절의 기록
기록 정리를 한다. 일단 기록물의 생산연도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내 상자 안에는 98년도부터 2021년도의 기록물이 쌓여있다. 이걸 연도별로 엑셀에 입력한 후, 식별 번호를 매겼다. 첫 번째 문서의 식별번호는 ‘일기01_98’이다. 기록물의 형태와 나열된 숫자, 그리고 연도로 구성한 식별번호는 이 기록물이 몇 번째 나열된 기록인지(01), 그리고 몇 년도의 기록인지(98) 알 수 있게 한다. 기록물 내용을 빠르게 인식하기 위해 생산연도 옆에는 해당 연도의 나이를 적었다. 대학에 입학했던 2004년, 첫 직장생활을 했던 2007년 등등이 기록물 내용과 쉽게 매칭되고 파악된다.
이어 ‘디지털화 필요’ ‘디지털화 여부’ ‘보관여부’를 기입한다. 정리를 목적으로 한 기록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록은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디지털화’ 한 것들은 ‘디지털화 여부’에 체크하고, 해당 기록물에도 포스트잇으로 이를 체크해두었다. 8월은 한달 간 기록물을 스캔하고 디지털화 작업을 했다.
보관여부는 기록물을 스캔하면서 기록물 자체를 보관할 필요가 있는지 파악한다. 낱장으로 흩어져 있는 메뉴스크립트는 딱히 보관할 필요가 없지만, 한권이 빼곡히 채워진 노트나 막 일을 시작해서 업무를 나름대로 정리한 기록들, 습작한 노트는 폐기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렵다. 작업 끝날 때까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비고란에는 해당 기록물의 특징이나 키워드가 될 만한 내용을 적어, 나중에 필요한 부분을 찾을 수 있게 메모해두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초년생이던 2000년 초의 노트는 대부분 창작노트다. 남의 글을 옮겨 적거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아이디어를 정리한 노트, 습작을 한 자국이 빼곡하다. 가지고 다닌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노트에는 공부한 내용이나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정리한 기록도 종종 보인다. 새로 일을 배울 때 늘 메모했다.
지난 해 출간한 책 <스마트폰으로 시작하는 유튜브>도 사실 2013년에 처음 촬영을 배울 때 메모하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 글기사를 쓸 때도 이런 것들을 메모해두었구나. 지금도 서툴기 짝이 없지만, 정말 햇병아리 시절이었던 때의 메모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거기에 대단한 정보가 담겨 있는 건 아니지만,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열망이 또박또박한 글씨체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반듯한 긴장감 같은 것이 그 노트에 묻어 있다.
졸업 즈음 다가가면 기록에는 비슷한 종류의 고민들과 끊임없는 다짐, 그리고 계획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기억에는 이것저것 거침없이 해낸 줄만 알았는데, 고민으로 눈떠서 다짐하면서 잠들곤 했다. 자잘한 실수들,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는 다짐들. 결국 이런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겠지. 지금의 내가 완전체라는 말이 결코 아니라, 이런 반성과 다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쳐지지 않는 나의 기질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괴롭히고 설득하고 어떤 것들은 타협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 싶다.
그때는, 그러니까 20대 시절에는 끊임없이 바깥에서 일이 있었다. 매일 버라이어티한 사건이 있었다. 대본을 완성하고, 연극을 했고,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런 일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친해지고,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배우기도 했다. 읽기만 해도 숨차다. 그때는 내 안에 골몰하기보다는 계속해서 휩쓸리는 바깥의 파도 속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뱃머리 잘 붙잡고 있어야지, 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멈춰서서 고민하는 그런 날은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나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최근에 나는 멈춰 서 있었던 걸까? 바깥활동 여부와도 관계가 있는 걸까. 누구도 만날 일 없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던, 코로나 탓일까. 음, 일단 그런 걸로 치자.
(또 하나 발견한 것. 정리하는 글을 쓸때 자꾸 '감각'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그러니까 일기를 통째로 읽어나갈 때 어떤 문장, 어떤 사건이 와닿기 보다 그 글속에 담겨 있는 어떤 분위기나 에너지가'감각'으로 와닿는다. 어떤 상황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의욕이 앞서거나, 뭐라도 해보려는 '감각'이 사건보다 더 와닿는다. 거리감이 생겨서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 건지, 구체적인 일들을 퉁치려는 마음의 작용인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