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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Aug 30. 2021

어떤 하루가 아니라 그보다 많은 하루하루가 중요했다

7. '선택'의 관점에서 일기 읽기

어떤 순간의 선택이

틀렸을까?



내 오래전 일기를 다시 읽는 이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나의 ‘선택’에 주목해보고 싶었다. 가끔 내 안에서 부정적인 마음이 차오르고, 무언가 원망하고 싶어질 때 나는 자꾸만 내 과거의 선택을 되새겨보곤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선택한 걸까? 무언가를 그만둘 때도, 새로 시작할 때도 – 이성보다 직관을 따르는 나는 – 늘 그렇듯 강한 직관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고, 더 나은 쪽을 선택했는데 어디가 틀렸을까? 답을 몰라서인지 자꾸 과거에 집착하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내 커리어는 어디에서 발을 잘못 디뎠던 걸까? 라는 또 하나의 질문을 안고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나름대로는 늘 하나의 꿈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커리어가 우회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30권의 스캔을 마친 지금, 나의 발견은 이러하다. 매사 고민투성이였던 내가 어느 하나 허투루 중한 선택을 내린 적은 없어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서른 네 살까지 기록에 따르면) 나는 지겹게 지겹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 중요한 순간에서는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일상의 어떤 순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스캔을 마친 기록물에는 포스트잇에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주말에 많은 작업을 했다


내가 계속 고민했던 것들 – 나는 오래 전부터 창작물을 쓰고 싶었고, 그 고뇌가 일기장 곳곳에 있는데, 그무렵 나는 습작한 것들을 끝까지 완결 짓고 넘어가지 않았다. 고민의 끝은 더 좋은 글감을 얻을 수 있는, 글 쓰는 일과 비슷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이 나의 삶과 상태를 고양시키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그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글쓰기는 글을 써야 해결되는 거지, 이직 자체가 해소시켜주는 일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의 중요한 선택으로 잘 되고 못 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에서 정답으로 직진하지 못한 순간이 빚어냈다. 그날그날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것뿐이다. 어떤 하루가 아니라, 그보다 많은 하루하루가 더 중요했다.      


어떤 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


반대로 내가 하루하루 선택을 했던 일은 오히려 연애였다. 나는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서 멋진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그것을 두고 고민했지만, 기록에 따르면 결코 고민만 하지 않았다. 언제나 촉수를 세우고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을 발견했고, 찾지 못하면 소개팅을 했고, 한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만나보았으며, 끊임없이 남자에 관해 좌절감을 느꼈지만, 인류애를 놓지 않았다.


놀랍게도 20  모든 순간, 실제로는 마음에 사랑 비슷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과연 사랑인가, 이런  연애인가, 내가 누군가 좋아할  있는 것일까이런 기록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진짜 좋은 사람 찾기,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멋진 연애 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20대의 나에게 진짜 감사한 일이다. 결국  10 동안 삽질하며 쌓은 데이터베이스로 서른이 넘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까. 나는 20대의 가장  고민   하나는 해결한 셈이다.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내리는 게 중한 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그쪽으로 최대한 직진하는  중요한 거였다.      


알고 있었지만, 기록을 보면서도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꾸준함이라는  다시 확인한다.  타고난 기질상 꾸준한 인간은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들- 간절하거나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은 딱히 각오하지 않아도 계속 하고 있지 않던가. 책을 읽는 , 클래식 음악을 듣는 , 영화를 보는 , 좋아하는  좋아한다고 떠드는 . 뉴스를 보는 , 그리고 이렇게 일기를 쓰는 .


그렇다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내게 어떤 일일까? 너무 간절해서 이제는 거대한 숙제 같은 일은 아닐까. 성공하지 못하면   시간이 부정되는 일처럼 느껴지는  아닐까. 기대가 커서 부담이 되어버린 일은 아닐까. 정말 책보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것처럼 설레고 즐거운 일일까.


예전만큼 습작도 못해서 괴롭기만  마음이었는데, 문득 나에게 이야기란, 글쓰기란 뭘까, 일기를 으며 다시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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