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선택'의 관점에서 일기 읽기
내 오래전 일기를 다시 읽는 이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나의 ‘선택’에 주목해보고 싶었다. 가끔 내 안에서 부정적인 마음이 차오르고, 무언가 원망하고 싶어질 때 나는 자꾸만 내 과거의 선택을 되새겨보곤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선택한 걸까? 무언가를 그만둘 때도, 새로 시작할 때도 – 이성보다 직관을 따르는 나는 – 늘 그렇듯 강한 직관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고, 더 나은 쪽을 선택했는데 어디가 틀렸을까? 답을 몰라서인지 자꾸 과거에 집착하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내 커리어는 어디에서 발을 잘못 디뎠던 걸까? 라는 또 하나의 질문을 안고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나름대로는 늘 하나의 꿈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커리어가 우회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30권의 스캔을 마친 지금, 나의 발견은 이러하다. 매사 고민투성이였던 내가 어느 하나 허투루 중한 선택을 내린 적은 없어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서른 네 살까지 기록에 따르면) 나는 지겹게 지겹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 중요한 순간에서는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오히려 일상의 어떤 순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내가 계속 고민했던 것들 – 나는 오래 전부터 창작물을 쓰고 싶었고, 그 고뇌가 일기장 곳곳에 있는데, 그무렵 나는 습작한 것들을 끝까지 완결 짓고 넘어가지 않았다. 고민의 끝은 더 좋은 글감을 얻을 수 있는, 글 쓰는 일과 비슷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이 나의 삶과 상태를 고양시키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그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글쓰기는 글을 써야 해결되는 거지, 이직 자체가 해소시켜주는 일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의 중요한 선택으로 잘 되고 못 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에서 정답으로 직진하지 못한 순간이 빚어냈다. 그날그날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것뿐이다. 어떤 하루가 아니라, 그보다 많은 하루하루가 더 중요했다.
반대로 내가 하루하루 선택을 했던 일은 오히려 연애였다. 나는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서 멋진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늘 그것을 두고 고민했지만, 기록에 따르면 결코 고민만 하지 않았다. 언제나 촉수를 세우고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을 발견했고, 찾지 못하면 소개팅을 했고, 한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 번 더 만나보았으며, 끊임없이 남자에 관해 좌절감을 느꼈지만, 인류애를 놓지 않았다.
놀랍게도 20대 그 모든 순간, 실제로는 마음에 사랑 비슷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과연 사랑인가, 이런 게 연애인가, 내가 누군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기록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진짜 좋은 사람 찾기’를,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멋진 연애’를 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20대의 나에게 진짜 감사한 일이다. 결국 그 10년 동안 삽질하며 쌓은 데이터베이스로 서른이 넘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까. 나는 20대의 가장 큰 고민 둘 중 하나는 해결한 셈이다.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내리는 게 중한 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그쪽으로 최대한 직진하는 게 중요한 거였다.
알고 있었지만, 기록을 보면서도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꾸준함이라는 걸 다시 확인한다. 난 타고난 기질상 꾸준한 인간은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들- 간절하거나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은 딱히 각오하지 않아도 계속 하고 있지 않던가. 책을 읽는 일,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 영화를 보는 일,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떠드는 일. 뉴스를 보는 일, 그리고 이렇게 일기를 쓰는 일.
그렇다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내게 어떤 일일까? 너무 간절해서 이제는 거대한 숙제 같은 일은 아닐까. 성공하지 못하면 그 긴 시간이 부정되는 일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기대가 커서 부담이 되어버린 일은 아닐까. 정말 책보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것처럼 설레고 즐거운 일일까.
예전만큼 습작도 못해서 괴롭기만 한 마음이었는데, 문득 나에게 이야기란, 글쓰기란 뭘까, 일기를 읽으며 다시 질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