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올해 초, 다실(茶室)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이 이렇게 큰 변화를 마주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시 그때로 기억을 돌려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꿈에 부풀어 있기도 했고, 일이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아 마음이 답답한 날을 보내기도 했다. 8개월 전 나의 모습은 정말 꿈을 꾼 것만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실은 이십 대부터 가져온 생각이기도 했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에너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기도 했다. 마음을 편히 두고 쉴만한 곳이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 큰 힘이 된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마음 쉴 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지음(知音)
'나를 잘 알아주는 벗'이라는 뜻을 담아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진짜 친구를 그리워하게 마련인데, 다실 '지음'은 그런 인연을 만나는 장소, 좋은 벗들과 기분 좋게 어울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브런치 '글찻집' 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오프라인 공간인 '다실 지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라인 공간인 '글찻집'에 풀어놓자는 생각이 처음 의도였다.
[다실 기획 관련 글]
정확히는 2019년 상반기, 영국과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사업을 구상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공간을 물색했다. 공간에 담고 싶은 콘셉트와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거의 확정했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업을 준비하며 계약까지 진행되려던 즈음에 코로나가 전국에, 전 세계에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관용어처럼 쓰이기 시작했고,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 간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 감염 확진자에 대한 정보가 휴대폰 문자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전송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외출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는 환경이어야만 다실 운영이 가능한데, 물리적인 대면을 가급적 피해야 하는 일상이라니. 다실을 시작하려는 내게 매우 큰 위기 상황이었다. 고민에 고민 끝에, 다실 계획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남겨두고, 나는 나대로 또 다른 길을 만들면 되는 것이지. 아쉬워하며 머뭇거리고 있기에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너무 많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모든 일에는 알맞은 시기와 타이밍이 있다고 믿는다. 만일, 아직 때가 이르기 전이라면,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타이밍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혹여나, 그렇지 않더라도, 기회는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주어질테니 시절 인연을 끌어낼만한 상황을 만들어내면 되는 법이다.
그저 아쉬워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시절 인연을 끌어내기로, 끊임없이 내 삶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상황과 상황을 연결하고, 인연을 창조해내는 일을 멈추지 않기로.
(다음 편에서 계속)
*시절 인연(時節因緣) :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