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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05. 2024

16. 아이슬란드 대스타 논니님께

안녕하세요, 논니님. 아니, 논니씨라고 불러야 할까요? 혹은 그냥 논니라고 불러 볼까요. 팸플릿 커버에 실린 친근한 당신의 모습이 떠 올라요.



먼저 사과부터 드려야겠네요. 당신을 그저 아퀴레이리 출신의 한 작가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책이 40여 국가에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말이에요!   



오늘, 당신이 열한 살까지 살았던 집에 다녀왔어요. 실은 어제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어요. 박물관에 가는 김에 우연히 그 앞의 옛날 집에 들러본 거였는데…


오후 4시, 집 앞에 섰을 때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고요했어요. 왠지 주변 사물들이 저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알짝 문을 열자 강렬한 나무 향이 코를 찔렀습니다. 호흡을 고르며 안으로 한 걸음 내딛자 나무 바닥이 끼익 소리를 냈어요. 살며시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좌우로 시선을 돌렸지요. 거기는 세트장이 아니었어요. 정말 누군가의 집이었어요. 심지어 백 년 전의 집이었죠! 일곱 난쟁이 집에 무단 침입한 백설공주가 떠 올랐어요. 내가 당신의 집에 들어온 거예요. 실내를 비추는 햇살이 어찌나 곱던지요. 열한 살 소년이 앉았던 의자, 탁자, 당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장식장과 작은 소품까지. 거실에서 부엌으로, 다시 응접실로 이어지는 그 공간은 그대로 그 시절의 그곳이었어요. 하루의 일과를 끝낸 누군가가 막 들어올 것만 같은 그곳이 지금은 기념비적인 장소라는 인식은, 이따금 탁자에 놓인 작은 종이 설명서를 발견할 때뿐이었어요.



한때 이 집에 네 가족, 즉 열여섯 명의 아이와 네 명의 성인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당신이 태어난 1857년 당시는 얼마나 열악했을까요?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데리고 얼마나 암담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당신에게 후원자가 생겨 프랑스로 떠나야 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당신과 어머니가 백작의 제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탁자 맞은편에 앉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그러나 엄마도, 아들도 울지 않았어요. 침묵만이 둘 사이에 가득했지요. 맞은편에 앉은 저만 조용히 울고 있었어요. 이후 1944년에 독일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당신은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어요. 어린 시절 아이슬란드 자연 속에서의 모험을 바탕으로 쓴 Nonni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되었죠.



그들 사이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침묵의 소리만이 크게 들렸습니다. 논니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열두 살 소년의 평생여정이 시작되었고, 어린 시절에 대한 멋진 기억이 논니의 마음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독일의 코펜하겐은 그가 예상치 못한 여정의 첫 번째 정거장이었고, 1년 후에는 프랑스에서 예수회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되고, 이후 그는 세계를 여행하게 됩니다.

- 탁자 위에 놓인 설명서에서 발췌



당신은 이후 어머니와 편지로만 연락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가난하더라도 몸가짐을 바로 할 것을 당부하셨죠. 그래서일까요, 당신이 어린이들을 위해 쓴 그림책에도 맑고 선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요.  



'매일 찬물로 온몸을 씻고, 피부가 따뜻해지고 혈액이 빠르게 순환하도록 문지르거라. 몸에 직접 닿는 옷은 항상 울로 된 것을 입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잘 입거라. 음식을 많이 먹지 말고, 식사 사이에 간식을 먹지 말거라. 저녁에는 기름기가 적은 가벼운 식사를 하거라. 매일 운동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거라. 가볍고 얇은 침구를 사용하고, 풀밭처럼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사용하거라. 오른쪽으로 누워라. 이는 위에 더 편안하다.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거라. 그러면 북쪽의 자기장이 신경 전류에 가장 잘 영향을 미친다. 음식을 먹은 후 한 시간 동안은 정신적인 활동을 하지 말거라. 채소를 많이 먹거라. 구운 빵을 먹거라. 더 건강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당신 방으로 가봤어요. 가난한 소년은 여기 누워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해요.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을 꿈꿨죠. 세계 여행에 대한 당신의 꿈은 여든이 되어서야 이루어져요. 드디어 당신은 아시아에, 그중에서도 일본에 가게 되지요. 그곳에 1년간 머물면서 아이슬란드와 동포들에 대해서 5000번 이상 강연을 했다고 해요. 매번 천명 이상의 청중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고요. 정말 대단해요. 그때 우리나라에도 와주셨더라면!  



소년은 농장에서 일한 대가로 동전을 모아 엄마, 아빠를 위한 커피잔 두 개를 샀어요. 당신이 떠나기 전, 어머니는 그 잔에 커피를 따르고 케이크 한 조각을 대접해 주셨죠. 마지막 만찬이었을까요.   



집안 곳곳에 배치된 설명 글은 당신이나 어머니의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구일까요?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야기는 이미 살아있는 존재로 제 마음속에 자리 잡았으니까요.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이 집을 피난처 삼아 하루하루를 견뎠을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모험을 꿈꿨을 당신을, 타국에서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했을 어린 소년 논니를, 그리고 80세에 이르러 꿈에 그리던 여행을 드디어 하게 된 당신을요. 당신의 집에서, 그 모든 것을 떠올려 봅니다.  



이제 저도 새로운 곳으로 떠납니다. 더 북쪽으로 가요. 고국을 떠났을 때 당신은 혼자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어요. 당신에게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에는 꿈이 스며 있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는 마법 가루가 되어 제게 스며들었어요. 고마워요, 논니님. 그 마법 가루, 잊지 않을게요.



또 올게요.



아이슬란드 역사:
아이슬란드는 현존하는 섬나라 중 가장 오랫동안 무인도로 남아 있었고, 최북단의 척박한 섬이었기에 유럽의 죄수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주요 기록은 18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는데,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어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고요한 나라였다. 1980년에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당선된 여자 대통령이 부각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지열 에너지로 인한 에너지 강대국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며, 자연 그대로의 지형이 여러 헐리우드 영화 촬영의 배경이 되면서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었다. 2024년 현재 아이슬란드 관광객의 수는 아이슬란드 총인구의 10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죽기 전 가보고 싶은 나라’ 조사에서 늘 상위에 랭킹 되곤 한다.



기존에 연재를 완료한 '엄마 혼자 버스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정 버젼입니다.
다시 읽고, 기억을 되새기며 다듬고 있습니다.
회차에 따라 지난 연재와 내용이 동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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