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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다 돼서 악플을 받아보니

거 참.

by 딴짓 Ma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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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꾸준히 게시물을 업로드하고, 내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SNS는 나를 보여줄 수 있고, 검증받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했다. 뭘 할까. 2년 전, 나는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뭘 검증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수년 째 방치 중이던 페이스북은 언젠가 계정이 털려 지인들에게 야한 영상을 마구 날린 전적이 있었다. 트위터 계정은 영구 정지를 먹은 지 오래였다. 누군가가 비어있는 내 계정을 도용해 악질의 영상을 뿌린 것 같았다. 트위터에서 날아온 공지글에 따르면 대강 그랬다. 스레드(Thread) 등 대안적인 소셜네트워크로 갈아타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나는 인스타그램에 합류했다.




나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게시물로만 시크하게 꾸미라고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알록달록, 이것저것, 잡채였다. 대부분 책 리뷰 글이었지만 그 외에도 잡다했다. 미적으로도 그저 그렇고 그랬다. 오늘자 팔로워 수는 169명이다. 댓글은 거의 달리지 않는다. 지인들이 '좋아요'를 간간히 달아줄 뿐이다.



그런데 악플이 달렸다. 자그마치 스무 개나! 와우! 인크레더블! 주목을 받은 그 영상은 바로바로 ㅡ

브런치 글 이미지 1


지난 주말인 3월 1일 삼일절날, 경복궁 앞에서 찍은 11초짜리 탄핵 찬성 집회 영상이었다.


태극기부대라 태극기부터 먼저  찾으셨나 보다. '감히 태극기를 들 수도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불법 집회 따위'라는 댓글도 있었다.

'가소로운 중국인들'이라는 댓글에는 어리둥절했다. 중국인?

무지개 깃발이나 들으라는 댓글은......

대뜸 '우리는 이겼다'는 뭐.

'너', '야', '~ 것들', '빨갱이'와 같은 반말, 비하, 조롱은 기본 값이었다.



흠......

기분이 퍽 좋지 않았다.

어리둥절했다.

씁쓸했다.

슬펐다.


이런 기분이구나.


존재감 없는 계정에까지 쫓아와 굳이 굳이 정성스레 댓글을 남기는 그 마음이란.

 

브런치 글 이미지 2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강.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의 매 문장을 쓰면서 그녀는 몸이 아팠다고 한다. 아니, 어떤 글이든 매번 그랬다고 한다. 역사에 대해 쓰는 것은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했다. 그녀의 작품 활동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핍박받았다. 그녀뿐이랴.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다.


세월호와 이태원 희생자들의 부모들도 생각이 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을 잃고, 끔찍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아픔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해 그들에게 쏟아진 악플들.


얼마 전 어린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떠올랐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댓글을 무시하고 그냥 두려고 했으나 영 신경이 쓰였다.

그걸 보게 될 내 지인들도 불편할 것 같았다.

해당 계정들을 차단시키자 글이 보이지 않았다.

삼 일 후, 해당 영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다시 아무렇지 않아 졌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뭐가 그리 신경 쓰여서 그이들은.


브런치 글 이미지 4


내일 모레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지난주와 동일하게 경복궁 앞에서 집회가 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더 관심을 갖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더 단단해지고, 적절한 분노를 발산하기로 했다.





<1975년, 전체 여성의 90%가 참여한 아이슬란드 총파업>

성차별에 대한 반대를 외친 파업으로, 이후 관련 법이 제정되었고, 1980년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후 16년 간 재임하였다. 퇴임 시 그녀의 지지도는 90%를 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2023년, 같은 곳에서의 아이슬란드 여성들 24시간 파업>

세계 성평등 지수 1위지만, '완전한 평등'과 '남녀뿐만 아니라 모든 젠더의 평등'을 외쳤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1975년 당시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의 성평등 지수는 비슷했다.

2024년 기준, 1위는 여전히 아이슬란드, 우리나라는 전년도보다 11단계 상승한 94위인데, 여전히 하위이다. 11단계 상승한 이유로는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의 개선에 기인하는데, 경제, 사회 분야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없는 걸로 판단된다고 한다.



평범한 나. 그저 허둥지둥 살아온 아줌마.

모든 것은 남의 얘기인 줄 알았던 나.

더 배우고, 자꾸 알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며, 연대하리라.



#악플 #여성 #진실 #정의 #세계여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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