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군산오름
석양은 사실상 매일 존재하지만, 1년에 한두 번도 제대로 보기 힘들다. 석양을 '의도적으로' '챙겨' 본 기억이 있었나? 있다면 언제였나? 미세먼지가 적은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석양을 보고 감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석양을 챙겨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제주도라고 항상 공기가 깨끗하진 않다.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이다. 하지만 4월부터 10월 정도까지는 대체로 청명한 편이라,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다. 특히 5월부터 6월 중순까지는 남들이 '인생 석양'이라고 불리는 석양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 제주 이주의 보람이 커지는 시기다.
때때로 서귀포에 사는 다른 친구들과 '석양 헌팅'이라는 것을 떠난다. 가시거리가 폭주하는 날이 있다. 거실에서 서쪽 바다를 바라봤을 때, 25km나 떨어진 마라도와 가파도가 선명히 보인다.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해 보면 가파도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날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아. 오늘은 석양이 심상치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날, 동네 친구들 몇몇에게 카톡을 돌린다. 오늘 석양 보러 갈까?
당연히 모두가 오케이 하진 않는다. 그러다 흐지부지 되는 날도 있다. 석양을 챙겨 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맞은 날, 서귀포의 친구들과 그들이 키우는 개들이 뭉쳐 석양을 보러 간다. 이런 날은 인생이 아름답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거대한 섬을 물들이는 붉은빛 아래 어른과 아이와 개가 나란히 산책한다. 정말 행복한 경험이다. 인생이 끝날 때 주마등 하이라이트에 기꺼이 포함시킬 수 있는 날이다.
솔직히 말하면, 서귀포가 석양의 최적지는 아니다. 행정구역상 제주시로 분류되지만 서쪽 끝단에 있는 한경면이 최고다. 해가 지는 각도 때문이다. 석양은 아무래도 해가 긴 계절에 아름답다. 여름에는 제주도의 서북쪽으로 해가 진다. 한림, 애월에 위치한 바닷가, 또는 서북쪽 바다가 보이는 중산간 지역이 진짜 석양 맛집이다.
하지만 서귀포에도 질 수 없는 석양 맛집이 몇 군데 있다. 이시보 양조장이 있는 신도리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군산오름이다. 군산오름은 쿠나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되었다. 언젠가 쿠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제주에서 나만의 힐링 스팟이 있는가? 그랬더니 그녀는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답했다. "해질녘의 군산오름."
해질녘의 군산오름.
왜 해질녘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묻지 않았다. 그냥 언젠가 가봐야 한다는 것만 깨달았다. 하지만 계기가 없으니 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다. 그러고 나서 그 질문을 했던 사실도 깡그리 잊어버렸다. 여름은 지나 버렸다. 그리고 가을의 끝자락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만난 것이다. 가시거리가 미쳐버린 날을. 서귀포 석양 헌팅 클럽의 파티원들이 모였다. 어디 갈까 정하다가 갑자기 군산오름이 떠올랐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제주도 남서쪽 대평리에 있는 넓은 들판을 '난드르'라고 부른다. 흔히 예래동이라고 부르는 동네다. 군산오름은 그 난드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오름이다. 오름이라 부르는 수백 개의 기생화산채 중에서도 가장 크다고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산을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보니, 군산오름이 얼마나 유명한지 몰랐던 것이다.
해 지는 시간을 확인하고 차를 가져갔더니, 이미 수많은 차량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오름을 향하는 입구에서부터 이미 막혀 있었다. 많은 차들이 서로 비킬 수 없는 좁은 공간에 한 번에 몰리게 되었다. 그 바람에 병목이 생긴 것이다. 내려가는 차들은 여섯 대, 올라가는 차들은 열세 대가 멈춰 섰다. 15분쯤 실랑이를 벌였다. 몇몇 열정적인 운전자들이 내려서 아주 적극적인 말투로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결국 내려오던 차 여덟 대(그 사이 두 대가 더 내려왔다)가 조심조심 오르막을 후진해 길을 비켜줬고, 열여덟 대(그 사이 다섯 대가 더 올라왔다)가 드디어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7분쯤 차로 올라가니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가 찾아왔다. 주차 가능한 공간에 비해 차들이 너무 많이 올라온 것이다. 그에 비해 이미 주차한 차들은 빠지지 않았다. 해가 지는 진풍경을 담느라 서둘러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믿을 수 없는 창의력을 발휘했다. 아무도 주차를 한 적 없던 희한한 공간을 찾아 잽싸게 주차를 마칠 수 있었다. 다들 나의 창의력을 칭찬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발휘한 초능력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친구들과 전망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고도가 높다 보니 미칠 듯이 차가운 강풍이 불었다. 수르(비숑 프리제, 당시 6세)는 내리자마자 거대한 똥을 쌌다. 번개같이 개똥을 줍고,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 정상을 오르는 좁은 계단을 한 칸씩 밟았다. 그런데 뒤따라 오던 간장 부인이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며 강풍을 뚫고 나와 와이프에게 소리쳤다. "언니, 형부, 잠깐만! 뒤돌아봐요!" 그래서 뒤돌아봤는데. 멀리 산방산 꼭대기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쨌든 오길 잘했구나.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등산도 싫어하고, 강풍도 싫어하고, 차가 막히는 것은 더 싫어한다. 개가 나쁜 타이밍에 똥을 싸는 것도 반기진 않는다. 하지만 해발 334.5미터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꽤 쓸만한 광경이었다. 특히 그 석양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산방산이라면 말이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서귀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동쪽으로는 섶섬 문섬 범섬 삼형제가 보였고, 서쪽으로는 산방산,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였다. 남쪽으로는 노을 지는 대양이 보였다.
강아지를 안아 올리고 귀에 속삭였다. "수르야 어때? 올라오길 잘했지? 경치 정말 멋지지?" 강아지의 코 끝에 콧물이 찔찔 흐르고 있었다. 내 손은 얼어붙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석양은 섬을 점점 더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붉은색은 서서히 자주색으로, 자주색에서 다시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석양 헌팅 클럽은 승리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뒤로 군산오름을 다시 찾은 날은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