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생전에 나로 인해 죽은 동물들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니 이건 지옥이던가? 오늘 여기에 귀여운 독일 꿀벌도 추가될 예정이다.
마켓이 열리는 마우어파크에 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인파 속 한 어린이가 치즈케이크를 들고 다니며 먹는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여 아이가 걸어 나온 방향대로 가니 정말 케이크 가판대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손에 큼지막한 사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스푼 뜨려는 찰나, 한 사람이 어디서 샀냐고 묻는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일러줬다. 이제 진짜 한 입 먹으려는데 맞은 편 테이블에서 "Entschuldigung(실례합니다)"이 들려온다. 설마 나한테 말하나 싶어서 쳐다보니 내 케이크를 가리키며 독일어로 말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두 가지. 이 케이크는 세 명이 판매처를 궁금해 할 만큼 확실히 맛있게 생겼다. 그리고 독일인은 궁금하면 엔슐디궁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마우어파크에서 갑자기 케이크 홍보대사가 된 나. 케이크 사장님 보셨나요? 제게 케이크를 하나 더 주시면 매출을 확실히 올려드리겠습니다.
이제 진짜 한 입 먹어볼까. 작은 벌이 케이크에 달라붙었다. 유기농 같은 느낌도 들고 벌까지 날아들 정도로 원재료에 충실한 것 같아 재료와 맛에 더 신뢰가 간다. 그러고 보니 어제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을 때도 진열장에 벌이 있었다. 어쩌면 독일에선 벌이 흔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언제 마지막으로 벌을 보았더라.
벌을 떼어내기 위해 손을 훠이훠이 저었으나 포기를 모르는 녀석, 떠나질 않는다. 하는 수없이 그냥 두었는데 벌들 사이에 무료급식소로 소문났는지 세 마리로 늘어났다. 기후변화 때문에 벌의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했는데 심지어 인간들이 너희 노동력을 착취해 꿀도 마음대로 가져다 쓰니 이까짓 케이크, 손톱만한 너희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니. 세 마리의 벌과 함께 둘러 앉아 사과 케이크를 먹었다. 역시나 맛이 좋다.
갑자기 오른 손가락이 찌릿했다. 함께 케이크를 나눠먹던 벌1호가 테이블 위에 앉았는데 내가 모르고 그 위에 손을 얹은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벌은 버둥거렸고 나는 쏘여 있었다. 미안해 작은 벌. 그나저나 벌에 쏘인 건 처음이라 이대로 둬도 괜찮은지 조금 걱정됐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사과 케이크를 먹다가 벌에 쏘이고 심각한 혼수상태에 빠진 한국인이란 헤드라인이 그려졌다. 손가락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는 수없이 반려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겸 한국에 전화했다.
“나 벌에 쏘였어. 아나필락시스 오는 거 아냐? 어떡해?”
“그건 여러 벌에 동시에 쏘였을 때 오는 거야. 한 마리면 괜찮아. 그나저나 그 벌 곧 죽겠네”
“왜 죽어? 내가 케익도 노나주고 물린 건 난데…”
“쏘고 나면 장기고 뭐고 다 빠져나가서 죽어. 바로는 아니고”
케익 홍보대사로 시작했다가 독일 꿀벌 한정 무한 급식소였다가 마침내 벌을 죽게 한 사람이 되다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고 의도와는 무관하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작년 TV에서 본 꿀벌 실종 사건이 떠올랐다. 전국에서 사라진 꿀벌이 최소 70억 마리인데 인간이 먹는 식량의 대다수가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기에 이대로 가다간 우리 음식의 3분의 2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꿀벌 실종의 주범은 기후 위기지만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할 때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쓰는 살충제가 벌들의 신경계에 작용해 그들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케이크를 먹은 벌들이 부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기를 바랄 뿐이다.
10월 1일,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