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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남 Sep 15. 2020

제주 한달살기의 마무리를 하며,

#정리해고 #희망퇴직 #인생

이번 제주 한달살기 마무리를 하며, Q&A를 적어본 글을 수정 및 보완하여 적어봤습니다. 


1. 한달살기를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책미남 #책미남로드 제주도 편을 기획하고, 북스테이_아베끄(AVEC)에서 저녁 7시 이후에 오롯이 저 혼자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맘껏 구경하고 읽기로 했습니다. 후기는 제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려고 했고요, 평생 일기도 작심삼일이었던 사람인데 지금 짧은 문장도 아닌 1000자 정도의 글을 매일 쓰고 있다는 사실(28일 연속)이 놀라우면서도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바로 한달살기 덕분인 것 같습니다.  


2. 한 달 동안 있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고 왜 행복했나요?


어떻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일이 행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소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도심 속에서 잘 보지 못했던 푸른 하늘을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했습니다. 


3. 한 달 동안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고 왜 기억에 남나요?


너무나도 많아 하나를 꼽을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답을 드려야 한다면, '섬 속의 섬 #비양도' 를 방문한 것입니다. 때마침 제가 갔을 때 감태 수확시기였는데, 한 할머니께서 제주도 방언인지 노래인지 말씀하시며 감태 말리는 모습에서 돌아가신 저의 친할머니 모습이 생각났었습니다. 뭐가 바쁘다고 제사 때 찾아뵙지 못하고 있는 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비양도 섬 전체의 느낌이 저의 유년 시절 비슷했던 포항 동해면 임곡리의 바다 느낌이 났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수영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진 25여 년 만인데 가슴 한편에 뭔가 뭉클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와 또다시 할 수 있을까, 꼭 한 번쯤 바다는 위험하니 수영장이라도 모시고 가서 함께 하고 싶다고 또 생각만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처음 해봤던 다크투어리즘이 기억에 남습니다. 장소는 알뜨르비행장이었습니다. 일제 치하의 제주 도민들의 아픔의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집을 향해 가는 길에 보이는 저 노을이 과거 선조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구요, 서대문형무소와 전쟁기념관 등을 여러 번 가봤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해 주신 선조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조용히 입으로 외치며, 후대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4.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살아 본 제주의 다른 점이나 새로 발견한 점은?


아무래도 도시 삶을 살다 바닷소리가 들리는 시골집에서 잠을 청하였는데 아침에는 닭울음소리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겹게 다가왔으며, 알람 없이도 새벽 5시에 저절로 눈을 떠지는 '미라클 모닝'을 경험했습니다. 서울 가서도 유지가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5. 한달살기를 하면서 나만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세 번의 태풍을 맞이했다는 경험입니다. 하나당 이틀에서 길게는 이틀하고 반나절 집콕 생활을 했으니, 거진 일주일은 방구석 생활을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제가 일전에 태풍관련 글도 써봤는데, 당시 이런 느낌이었었습니다. "그나저나 오전 하루 종일 비바람이 불고 있는, 이곳 제주도에서 홀로 방 안에서 창문 밖 너머 제주의 돌담집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강품이라도 저 돌들을 어떻게 쌓았길래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래도 돌챙이분들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기합니다 볼 때마다. 단 하나의 돌도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6. 한달살기를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한달살기가 아니라 앞으로 '연세살이'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아직 가보지도 못한 곳과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COVID-19 2.5단계와 태풍으로 인해 패러글라이딩, 서핑체험, 제주맥주 양조장 투어를 못한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7. 한달살기를 하며 느낀 점은 무엇이며 전과는 달라진 변화가 있나요?


저의 오랜 친구가 "누구는 콘크리트 벽에 갇혀 죽어라 일만 하고, 누구는 자연을 즐기고 만끽하며 제주 라이프를 즐기고 부럽다."라고 하루에 한통씩 전화나 문자로 이야기합니다. 전 처음에 무급휴가(반백수) 중인 저에게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할 거 없이 그저 그랬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계속되는 저 말에 저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쉼 없이 달려온 저에게 아니 어쩌면 제 인생에서 다시 못 올 기회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삶을 보다 좀 더 즐기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신기합니다. 첫날 제주도에 도착하고 하루하루 어떻게 지낼지 궁금했었는데, 초반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편안해졌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제주 한달살기는 끝이 나겠지만, 이번 경험으로 인해 한결 수월해진 삶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페시미스틱(pessimistic)한 생각을 조금 덜어냈다는 것 만으로 전 만족합니다.


한달살기를 계획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고민이시라면 기회 되실 때 꼭 한 번쯤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인생에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포리즘 하나 남겨드리고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의미 없는 것을 잔뜩 하는 것이 인생이란다.”  ⏤『마루코는 아홉 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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