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가 내립니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 듯 두텁게 덮인 회색구름을 비집고 쉬지 않고 내려앉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바다에 가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파도는 불규칙한 선들로 너울대며 흰 포말의 흔적들이 사라졌다 뒤엉키는 혼돈의 공간 속을 응시하고 서 있으면 강렬한 원시적인 힘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 힘 앞에서 저도 모르게 발을 뒤로 물리곤 합니다. 무릎만 꿇지 않은 신께 드리는 경배의 마음, 그 무게로 저절로 움찔거리게 되는가 봅니다. 계절이 어떻든, 기온이 어떻든 이런 날의 바다는 늘 서늘해요. 감히 인간의 어떤 것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노라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가장 깊은 바닷속 해구에 꽂아 넣는 소리가 들려요. 세계가 두 조각이 날 것처럼 깊숙이 우렁 대며 울리는 소리가요.
으르렁대던 바다가 물결을 햇살 아래 물결을 잠재우고 나면 해안가에는 바다가 토해놓은 것들이 쌓여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한가득이라 어린 날의 저는 엄마 몰래 커다란 부대자루를 들고서 달려 나오곤 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은 작은 장화를 주웠는데, 안에 벌써 소라게 한 마리 둥지를 찾은 듯 들어앉아 들여다보는 제게 집게발을 치켜들며 성을 내고 있었죠. 그게 만약 사람 손이었다면 제게 치켜든 것이 어떤 손가락인지 단박에 알 것 같은 정말 분명한 집게발의 움직임에 놀라 얼른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신발의 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죠. 그때부터 신발주인에 관한 상상에 빠져들었더랬죠. 집 나간 딸내미 찾아 갯가시 언덕길을 달려내려 온 엄마 손에 귀를 잡혀 끌려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닷가에 앉아있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오래전에요.
하지만, 어린 날의 작은 상상들(로빈슨 크루소나 15 소년 표류기 같은 모험물)은 2015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소식을 들은 뒤로 멈춰버렸습니다. 분쟁과 폭력, 잔인한 박해를 피해 바닷길로 떠난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난민들. 그들이 이야기가 작은 아이로 인해 현실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생의 절망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한 작은 동화, "바다의 기도"를 읽고 먹먹해진 가슴을 달래기 위해 오래 모래사장 위를 걷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신으로 2006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돕고 있는 작가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작품인 이 책은, 작은 동화책처럼 짧은 글과 아름다운 삽화가 인상적입니다.
작가의 전작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을 그려냈죠.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친구였던 하산을 억울한 누명을 씌워 자신의 집에서 쫓아낸 아미르가 어른이 되어 친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연’은 바로 어린 시절 친구를 모른 척 한 죄책감을 가슴에 안고 있는 아미르가 절실히 되찾고 싶었던 우정에 대한 상징이고 또한 깨어진 우정을 되찾기 위한 ‘용기’를 뜻하죠. 아미르의 여정을 통해 우정의 회복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멋진 소설입니다. 사랑과 우정,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결함이 생겼던 성장과정들이 메꿔지고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들어주어 많이 아끼는 책이죠.
하지만 이번 신간 <<바다의 기도>>는 올해 다시 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완, 아빠는 달빛에 비친 네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단다. 깊은 잠에 빠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너의 속눈썹을 말이야.
"마르완, 아빠의 손을 잡으렴,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건 그저 나의 바람일 뿐. 그 헛된 다짐이 우리의 믿음을 짓밟는구나.
아빠는 그저 저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넓고 얼마나 차가운지, 그 바다로부터 너를 지키기에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단다. ...
바다가 내 기도를 들어주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했단다. 인샬라.
2016. Yannis Behrakis : 태양 아래의 난민들
희망이 아닌 날 것의 아픔을 그대로 새겨놓은 책이었죠. 사랑과 믿음으로 치유되던 날들이 아닌 아직도 이어지는 비극의 한 부분들이 무딘 칼날처럼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롭던 마르완이란 아이와 아버지의 일상들이 폭격으로 무너져버린 집과 폐허가 된 도시로 배경을 바꾼 뒤 칠흑보다 더 어두운 바다를 향해 수십 명이 배에 오르는 순간, 이 말이 나옵니다.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도 살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이들. 소중한 아이의 모습이 달빛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아버지의 마음속 읊조림. 그들이 보트에 올라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에서 소설가 정세랑의 <<섬의 애슐리>>란 단편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본토라 불리는 어떤 나라에서 우주왕복선에 핵탄두를 싣고 발사했는데, 기계결함으로 왕복선이 그대로 추락해 항공우주센터 인근의 생화학 무기가 보관된 군사기지로 왕복선이 떨어져 버리죠. 이 일로 본토가 초토화되어 작은 섬으로 보트피플이 된 본토인들이 모여들며 소설이 시작됩니다.
어떤 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소극적인 주인공 섬의 흔하디 흔한 이름의 애슐리는 한 다큐 사진기자에 의해 본토인들을 맞이하는 순간을 담은 모습이 찍히며 이 사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이 되어버리죠. 그런 그녀에게 섬의 유명인에 속하는 아투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고, 둘은 결혼을 해요. 그 뒤 본토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염전까지 막아 섬을 확장하는 사업을 진행하던 중 생각보다 빨리 복구된 본토로 돌아가는 이들이 속출하며 섬의 확장사업은 사면초가에 놓이죠. 이때 아투는 본토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섬을 위해 드라마틱한 사건을 계획하죠. 불타버린 정박선에 아무도 모르게 애슐리를 묶어두고 그녀가 실종된 것처럼 기사를 나보내며 세계인의 이목을 끕니다.
애슐리는 살아오는 내내 은근한, 또는 직접적인 세상의 폭력에 순응하고 익숙해져 그것들이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쉽게 체념하고, 자신이 어떤 것에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금방 마음을 읽혀서 조종을 당하는 인물이, 위기를 넘기고 그 세상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끝내 용기를 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과 마주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짧은 단편 속에 녹여내고 있죠. 다큐 사진작가의 개입과 그로 인해 전개되는 사건들이 흥미로워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은 손끝에서 책장이 쉽게 넘겨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폭력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살아가고 있죠. 물리적인 폭력에서부터 언어나 감정으로 죄어드는 폭력까지 얼굴을 달리 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채 느린 걸음의 거북이처럼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자신들만의 노력을 하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각성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과 각성을 통해서도 어떻게 바꿔보지 못하는 환경의 차이를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바다 위에서 한 점 점보다도 작게 부서져 흩어지는 순간들을 목도했습니다. 점으로 흩어진 기도는 보트 위에서 흩어진 사람들의 흔적으로 해변가에 밀려와 대답 없는 신의 행방을 되묻게 만들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이 한 가지 아주 작은 희망으로 어두운 밤을 가르는 보트 위에 선 이들을 위해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게 돼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들의 아픔을 위해서 바람이 멎기를, 해류의 거친 순환이 그들을 피해 가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런 폭력들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많은 존재들에게 생각이 이어집니다. 저부터도 말로도 그들에게 어떤 폭력도 행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기원해요. 세상 모든 약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오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품어 안는 울타리가 더 커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늘입니다. 저 너머 통곡의 땅의 비극들을 전하는 뉴스를 보니 이 책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부디 폭력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오늘이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