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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Jun 10. 2024

너의 유년시절과 나의 육아일기

3개월 10일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피신하듯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하루종일 울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울 때는 왜 우는지,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피곤해 하는 기색도 잘 알아차려서 제때 재워주고, 아이가 잘 때는 집안일을 하거나 아니면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취미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엄청 울었다. 놀 때는 피곤해져서 금방 울고, 재울 때는 너무 피곤하니까 본인도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악을 쓰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눈은 시뻘개져가지고 부릅뜬 채로 멍 때리고 있다가 또 “으아아앙!” 하고 울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는 아직 3개월령이지만 어째서인지 수유텀이 4.5시간이 나오고 있었다. 육아 책들을 찾아보면 다들 이맘때쯤은 3시간 간격으로 배고파 한다는데, 아무리 아이를 관찰해봐도 3시간 지나서 배고프다는 표시는 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먹-놀-잠’을 하기 위해서 낮잠을 한번에 3시간씩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아기도 낮잠을 한 번에 3시간 내리 자면 밤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니, 2시간 이상 자려고 하면 깨워야 한다는 게 육아서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하는 수 없이 ‘먹-놀-잠’ 대신에 ‘먹-놀-잠-놀-잠’을 채택했다. 보통 밥을 먹고 나서는 다음 수유 전까지 낮잠을 두 차례로 끊어서 잤다. 오전 7~11시 반 사이에 두 번, 11시 반~3시 반 사이에 두 번. 그리고 저녁 3시 반~7시 반 사이에는 한 번만 재우고 저녁 7시에 마지막으로 수유해 준 다음 바로 밤잠을 재워줬다.

그 중에서 오전 낮잠 중 1회차 낮잠이 가장 재우기가 수월했다. 그래서 보통은 그 시간대에 아이를 재워놓고서 마음 편하게 놀이 매트도 닦고 설거지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가 첫번째 낮잠을 잠든 지 20분 만에 깨어났다. 그리고는 도저히 다시 잠들 생각이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를 어쩌나. 이대로 11시 반까지 어떻게 버티지? 낮잠을 2시간씩 재울 수가 있으려나? 아무튼 이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강제로 감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놀게 해주었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해서, 아이는 오전 2회차 낮잠에 쉽사리 입면하지 못했다. 엄청 울다가 잠든 탓에 자면서도 히끅거렸다. 그마저도 자다가 혼자 소리지르거나 외마디 울음을 내뱉고는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엄청 울어서 안아 올렸더니 트림을 살짝 했다. 아가, 트림 때문이었니? 아무튼 30분 동안 안아서 재워주다가 밥을 먹였다.


오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입면했다. 

아니, 비교적이라기에는 절대적으로 수월했다. 뭘 하고 놀아도 눈 주위가 벌개져서 칭얼대기에 ‘아, 피곤하구나’ 하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여기저기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진정시켜주었다. 그러다 침대에 뉘였는데 2분만에 잠들었다. 세상에, 나는 늘 20분을 각오하고 재우러 들어오는데. 이게 웬 횡재람?

평화롭게 잠든 만큼, 아이는 미동도 없이 대자로 뻗어서 쿨쿨 50분 동안 잤다. 평소에는 30~40분 정도 토끼잠을 자고 나서 깼기 때문에 이 또한 횡재였다. 덕분에 집안일도 좀 하고, 글도 좀 쓰면서 숨을 돌릴 수 있었따. 

하지만 평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50분 자고 일어난 아이를 좀 놀게 해 준 다음에 다시 재우려고 했더니, 웬걸 엄청나게 울어제꼈다. 옆잠 베개도, 안아 재우기도 소용 없었다. 

그렇게 30분 동안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웃집 화장실에서 수건걸이라도 교체하는지 땅땅 거리는 소리가 타일벽을 타고 안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이제는 재워도 소용 없겠군……’ 하는 판단으로 아이를 옆잠 베개 통째로 들고서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거실에서도 잠들지 못해 엉엉 울었다.

그러자 나도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돼서 아이를 베개에서 꺼내 뜬금없이 터미타임을 시켰다. 그리고 그 앞에서 호빵맨 딸랑이를 흔들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엉엉 울던 소리가 히끅거림으로 잦아들었고, 벌개진 눈주위와 얼굴이 점점 원래의 뽀얀 피부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진정이 되다니? 아마 본인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곧이어 친정 어머니께서 오셨고, 아이를 안아 재워주셨다. 피곤하기는 했는지 아이는 어른들의 두런두런 말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아이 울음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더니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잠시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친정 어머니가 구세주처럼 나타나주신 덕분에 한숨 돌리는 사이, 애플워치에 쌓여 있던 알람들을 훑어봤다. 그 중 하나는 내 청력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소음 환경] 소음 레벨이 90dB에 다다랐습니다. 약 30분 동안 이 레벨에 노출되면 일시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청각 손실? 어쩐지 귀청이 떨어질 것 같더라니. 돌고래 소리라든지 초음파 공격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 환경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듣기 보호 장치를 사용하거나 더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고려해 보십시오.’

더 조용한 곳이라. 

육아서들에서 입을 모아 말하기를, 아이가 너무 울어서 지친다면 잠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난간이 쳐진 침대처럼 안전한 곳에 아이를 두든지, 아니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든지 한 다음에 어디 다른 데에 가서 차나 한 잔 하고 오라는 말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어렴풋하게 ‘뭐, 정 힘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하자, 왜 그런 소리가 나왔는지 너무도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육아책을 미리 읽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순간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무작정 거리로 나서야겠다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죄책감부터 느꼈을 테니까. 


밖으로 나와서 기분전환을 했더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임신 중에는 조산기 때문에 조심하고, 출산 후에는 모유수유를 하느라고 한동안 디카페인만 찾아 먹었다. 그랬더니 며칠 전에 커피 반 잔을 마셨다가 밤늦도록 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디카페인 카페 라떼를 파는 집을 떠올려 봤다. 스타벅스는 잠깐 머물기에는 가격대가 좀 있으니, 메가 커피가 적당하겠네…….

소위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백일쯤 되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도 하고 수면교육도 효과를 봐서 통잠도 곧잘 잔다는 뜻이었다. 한편으로는 ‘백일의 기절’이 대신 올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오히려 백일이 되어서 밤중수유가 부활한다든지 하여튼 뭔가 퇴행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될 줄이야. 오늘이 딱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오전 오후를 통틀어서 계속 울음바다가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어찌나 지치던지, 오후에 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안아 재워주실 때 나도 알집매트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스르르 잠이 든 날이었다. 

저녁 마지막 수유를 남편에게 맡기고 일단 밖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늦봄, 혹은 여름 초입의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었다. 하늘에는 파스텔톤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푹 눌러쓴 분홍색 모자와 비슷한 색이었다. 결국 숱과 탈모의 싸움은 임신성 탈모의 승리로 끝났다. 머리숱이 줄어서 샤워할 때 가벼운 기분이 드는 것은 좋은데, 머리가 전체적으로 빠지지 않고 앞쪽부터 살살 빠져서 이마 라인이 숭숭 비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식으로 공략을 하다니. 


오늘 하루는 나에게도 힘들었지만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여러모로 미숙했다. 피곤하면 잠을 자야 피로가 풀리고, 잠을 자려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작고 여린 사람이었다. 피곤해서 울고, 울어서 더 피곤해지고, 잠이 자꾸 달아나고, 그래서 괴로웠을 아이를 떠올렸다. 

그래도 아기는 정말 회복이 빨랐다. 손톱으로 콧잔등을 긁어서 피가 나더라도 다다음날이면 상처가 아물어 있을 정도로 신체적 회복도 빨랐지만, 심리적 회복도 참 빨랐다. 오늘만 해도 오전에 그렇게 울어놓고서 점심 수유 후에는 방긋방긋 웃으며 또 잘 놀았고, 잠도 잘 잤다. 

어쩌면 아이의 회복력은 초보 부모를 위해 신이 만든 설계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실수쯤은 아이가 알아서 회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초보 부모의 사소한 실수가 만회될 수 있도록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친정 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는 동안, 나는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기체육관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아기체육관은 천으로 된 매트 위에 굵은 와이어 두 개가 달린 형태였다. 그런데 와이어의 한쪽 끝을 풀었더니 와이어가 다른 쪽 끝에 매트를 달랑달랑 매단 채로 마치 깃발처럼 짠 하고 펼쳐졌다. 

‘이거 재밌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와이어를 붙잡고 아기체육관을 거실에서 천천히 흔들었다. 대학생 때 응원단에서 이런 대형 깃발을 흔들던 모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거실 사이즈에 맞지 않게 천장까지 가득 나부끼는 거대한 깃발……. 어른도 흥미로운데, 아기는 얼마나 신기할꼬?

“루나야, 이게 뭐야~?”

역시 아이는 곧바로 이 쪽을 보며 팔다리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누구 말마따나 노벨 평화상 감인 타이니 러브 모빌도 지금만큼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런 설치미술급 특대 사이즈는 처음이지?

그 순간 나는 하루의 고단함을 모두 잊고, 어디론가 공간의 틈새로 아이와 함께 빠져나가서 같이 유년시절을 살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걸까? 하지만 살짝 달랐다. 지금 나는 저 작은 아이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시절에는 무성영화 같은 시기가 존재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종종 ‘나는 어렸을 때 어땠지?’를 곰곰이 짚어보곤 했다. 우선 아이는 지금 말을 못 하니까, 어떻게 하면 내 뜻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그랬더니 나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이유 모르게 주위를 서성이던 것을 그저 바라만 보던 적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너도 그렇겠구나. 외국어를 쓰는 낯선 땅에 홀로 초대 받아 온 기분이겠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내가 유년시절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언젠가 초어로서 ‘엄마’를 말할 것이고, 본인에게는 내가 엄마를 뜻하겠지? 즐겁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주는 든든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또 돌이켜보면 나도 엄청난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저 대한민국의 여러 90년대생 장녀들처럼 보통의 어린이로서 자랐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어렸을 때의 여러 행복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비오는 날 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 동심원을 그리던 빗방울들. 놀이공원에서 돌아와 욕실에서 동생과 함께 비눗방울을 만들던 장면. 심심할 때 비디오 테이프로 애니메이션이나 학습 만화를 봤던 시간들. 때때로 꺼내어 읽던 위인전과 전래동화 전집의 알쏭달쏭한 삽화들. 엄마가 9등분으로 잘라주곤 했던 슬라이스 치즈의 모양.

어쩌면 나의 아이는 오늘, 유년시절의 기억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깃발’이 추가되었을지 모르겠다. 피곤한데 잘 재워주지 못했던 엄마의 기억은 뒤로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던 타이니 러브 모빌과 방방 튕기던 바운서의 감각, 따끈하고 첨벙이던 목욕물의 감촉만이 남았으면 좋겠다. 

대단하게 해주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의 유년시절이 온통 즐겁고, 다정하고, 신기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희망해 본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Melissa As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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