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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Jun 17. 2024

책과 커피와 아기와 파리지엥

3개월 13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최근에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어찌 보면 갈 필요가 없는 도서관에 굳이 굳이 간 셈이었다. 웬만한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 다운로드하고 읽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도서관처럼 나중에 반납 일정 지켜서 다시 가야 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전자책 단말기로 읽으면 되니, 아기 만지기 전에 종이책 만졌던 손을 비누로 씻어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왠지 발걸음은 도서관을 향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온 주말 오후였다.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은 주말이 아니면 외출이 어려웠다. 마늘과 쑥 먹듯이 100일을 버텨서 드디어 면역력을 확보했나 했는데, 웬걸 이제는 자외선을 조심하란다.


원래는 도서관이 아니라 서점을 갈까 싶었다. 그래서 지하철역으로 몇 걸음 옮기고 있었는데 문득 마음이 바뀌었다. 서점에 가면 왠지 그 많은 신간들에 내가 압도당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베스트셀러부터 시작해서 출판사들이 밀어주고 있는 책들까지. 그럴 필요 없는데 굳이 나의 글과 서점의 책들을 비교하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다행히 집 근처 주민센터 3층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이름 그대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도 좋고, 구매욕구나 허영심이 아니라 순전히 책을 읽고 싶어서 방문한 애독가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그 조그만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집어들게 될 지는 몰라도, 일단은 서점을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는 도서관이었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방문했을 때는 피자를 테마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도서관 중앙에는 피자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피자박스를 열면 랜덤한 책한 권과 함께 젤리 같은 작은 간식, 그리고 씨앗 캡슐이 달린 연필이 들어있어서 증정품도 가져갈 수 있었다. ‘책을 피자!’라는 이벤트 이름도 귀여웠고, 평소 같았으면 손이 안 갔을 SF소설도 덕분에 읽어볼 수 있던 흥미로운 행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켠에 진열된 ‘북 큐레이션’ 진열대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그러나 진열대에 놓인 추천 도서들도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라면을 끓이며>라든가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처럼 기존에 읽은 책들이 있으니 아마 다른 책들도 내 취향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괜스레 ‘이 중에는 아마 나랑 맞는 책은 없을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일반 서가로 갔고, 가까운 코너인 소설 쪽을 기웃거렸다. 가장 잘 보이는 쪽에는 일본 추리 소설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육아를 하다 보면, 추리 소설에 푹 빠져 있기란 어렵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이라는 소설책이 눈에 띄었다. 왜 하필 목요일? 그나저나 코코아라니, 달고 따뜻하고 맛있겠다. ‘나도 나중에 책 제목 지으면 이렇게 눈길을 끄는 포근한 제목으로 짓고 싶구만……’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집어들었다.


사서들이 고심해서 추천한 도서들은 그냥 쓱 보고 지나갔으면서, 웬 듣도보도 못한 책을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고르다니. 하지만 이런 게 도서관의 매력인걸? 우연히 책을 마주치고, 책값 부담 없이 쓱쓱 읽고.


그리고는 여행 코너를 기웃거렸다. 여행책은 언제나 기분전환에 좋으니까. 그런데 집콕 육아를 하면서 이런 걸 읽으면 상대적 박탈감만 셀프로 조장하는 거 아니야? 혹은 도피성 독서 같은 게 되려나? 실제로는 여행을 못 가니까, 이런 걸로 현실 부정을 하는 셈이지.


‘뭔 소리야. 나는 원래부터 여행 책을 좋아했어.’


그렇게 세 권을 더 집어들었다.




소설책은 나중에 집에서 보기로 하고, 우선은 여행책을 먼저 읽었다. <À Paris: 내가 꿈꾸던 게으른 시간>이라는 책이었다.


읽을수록 여행책은 꾸준히 주기적으로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구의동에서, 그것도 대체로 집에 머물며 육아를 하던 일상에 익숙해져가던 차였다. 그러다 여행책을 읽었더니 새로운 곳과 낯선 생활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솔솔 피어올랐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보고도 싶었고, 새로운 동네, 혹은 익숙한 동네더라도 여기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 사는 경험도 다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집필을 중단하고 있던 소설도 연재를 재개하고 싶어졌다. 여행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여행에 대한 감을 완전히 잃어버렸기에 아무 것도 못 쓰고 있던 차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가 자라는 것은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아이가 등 대고 누워서 파닥거리는 일 외에 먹고, 마시고, 옷 갈아입는 등의 모든 필요를 부모인 내가 충족시켜주는 생활이 평생 이어질 리 없었다. “언제까지 목욕을 손수 시켜줘야 하나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스스로 샤워하고 있었다”라던 친정 어머니의 이야기는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미래였다.


어떤 육아서에서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다음 여행 계획을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언젠가는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고, 또 그것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내가 완전히 현재 버전의 육아만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파리와 베를린 책에 이어서, <아이와 세계여행>이라는 책도 한 권 빌렸다.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책이었다. ‘그냥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든가, ‘그렇게 번거로우면 아이를 맡겨놓고 혼자 다녀오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아이를 안 키워봤다는 방증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서관 한켠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어른스럽고 대견해 보였다. 아직은 완전히 아기인 내 아이도 나중에 커서 저런 의젓한 어린이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겨우 만 3개월차 인생인 작은 사람이니 집에서 늘상 돌봐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어린이집도 가고 초등학교도 갈 테였다. 그렇게 대학교도 가고, 혼자서 어디 여행도 다니고, 사회 생활도 하고, 자기 몫의 돈도 벌기 시작하고…….


언제까지나 품 안의 자식일 수는 없으니, 그렇게 서서히 아이는 독립해나갈 것이다. 그 첫걸음은 아마 어린이집 입소가 될 테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지금 모습은 모든 것을 어른에게 의지해야 하는 작고 여린 존재였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이 어린 아이를 기관에 위탁한다니.


그러고 보면 육아휴직도 평생 쓸 수 있는 제도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고, 스스로도 복직 날짜를 종종 가늠해보곤 했지만, 아이를 어딘가에 하루종일 맡길 일을 상상하자 어쩐지 복직이라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로 내가 미래에 아이를 한나절씩 떼어 두고 산다고? 나를 보기만 해도 아무 이유 없이 방긋방긋 잘 웃는 이 귀엽고 작은 아이를?




‘휴직 기간에 외국어를 하나 더 배워볼까…….’


여행책을 읽다보니 외국어에 또 관심이 생겼다. 확실히 대만에 놀러갔을 때는 그 전에 배워두었던 중국어를 십분 활용해서 톡톡히 덕을 봤었다. 반면에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은 여행 직전에 “맛있어요” 같은 기본 회화만 익혀간 정도였다. 그러니 더 공부해두면 다음번에 여행 갈 때 훨씬 재미있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휴직 기간을 그렇게 사용하는 편이 과연 좋을지 고민되었다. 어쩌면 인생에 몇 번 없을 일시정지 기간인데, 갈지 안 갈지 모르는 미래의 여행보다는 좀 더 인생 전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만약 이대로 복직을 하게 되면, 그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지만 현실이 되어버렸던 회사원으로서의 나날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똑같은 일을, 별다른 목표도 없이, 은퇴할 때까지 내도록…….


그렇게 평생을 살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나 자신도 우물쭈물하고 살았으면서, 과연 그런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인생을 도전적으로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월급 잘 나오고 명함도 번듯한 대기업을 다니면서, 왜 별나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싶기도 하다. 남들도 잘만 살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라고.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니 커피가 간절해졌다.


아무래도 어제 백일잔치를 하느라 좀 피로가 쌓인 모양이었다. 아이의 친가와 외가 쪽 식구분들이 다녀가시고 나서, 남편과 함께 백일상 차렸던 행사용품도 정리하고 소파와 식탁 자리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온갖 집안 살림을 원상복구 시켰더니 두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육체노동한 셈이 되었다.


도저히 커피 없이는 버틸 수가 없어서, 빌린 책들을 들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예전에 몇 번 가봤던, 딸기 케이크를 파는 조그만 가게였다. 만약 그 집에 자리가 없으면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와야지.


물론 집에서 책을 마저 읽는 것도 방법이었다. 게다가 집에는 나를 반겨주는 귀여운 아기까지 있으니 메리트가 두 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에서는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기 어려웠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더라도, 한 쪽에서는 우는 아이를 열심히 업고 어르고 하는데 그 옆에 멀뚱히 앉아서 시치미 뚝 떼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기가 눈치 보였다.


다행히 카페에는 좌석이 널널하게 남아 있었다. 조그만 딸기 케이크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평소 같았으면 카페인 들어간 음료를 마시면 잠이 달아나서 곤란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바로 그것이 내가 원하는 효과였다. 지금이 아니면 당장 내일부터 평일 집콕 육아 모드로 전환이었다. 그러면 여유로운 독서 따위는 다음 주말을 기약해야 했다.




도서관에서 읽던 파리 여행 책을 카페에 앉아 계속 읽었다.


주문한 딸기 케이크와 어울리는 붉은 제목의 표지였다. 자매가 공동 집필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한 명은 요리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책의 중반에 요리 도구 전문점에 들른 이야기가 나왔다.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그 장소는 놀이동산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 사람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요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구나…….’


문득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설마 ‘회사 다니는 사람’? 아휴, 그건 차라리 규정을 안 하느니만 못하지.


어쩌면 나는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머뭇거려졌다. 왜일까? 내가 그 일을 생업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생업으로 삼을 만큼 벌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벌이가 상당할 정도로 인기 있는 글을 써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로 작아지는 걸까.


그러면서 은연중에 나는 그 파리 여행책을 평가하고 있었다. 감성적인 사진들도 많고 종이도 빳빳하니 만듦새가 참 좋은 책인데, 그에 비해서 오타가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동어반복처럼 조금만 다듬으면 좋을 것 같은 문장들도 때때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아쉬웠고,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나는 출판사 없이 혼자 낑낑대며 가내수공업으로 책을 만들면서도 오타 검수를 몇 번씩 하면서 엄청 공들였는데, 이 좋은 책은 따로 편집자와 출판사를 뒀을 텐데도 옥의 티를 좀 가지고 세상에 나왔구나.




어쩌면 나의 팍팍한 잣대는 평소에는 스스로를 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내가 “집안일도 회사일처럼 한다”고 말했다. 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할 일 목록을 주욱 적었다. 젖병 설거지처럼 매일 해야 하는 루틴한 일들의 리스트 하나, 그리고 ‘한복 입히고 사진 찍어보기’처럼 수시로 생긴 일들의 리스트 하나를 만들어서 관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세수시키고 수유는 대강 몇시 몇시에 준다는 등의 하루 운영 일과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집안일을 빈틈없이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에 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제 또 뭘 해야 하지? 아차, 이걸 안했네.’하는 패턴을 끝내고, ‘자 이제 목록을 모두 해치웠으니 집안일 말고 다른 걸 해 볼까’라고 할 수 있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목록들의 끝에는 정말 무엇이 있었을까? 보통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을 했다. 오늘은 요즘 읽고 있던 <이웃집 부자들>이라는 책을 마저 읽을까 생각했다. 100억 부자 말고, 3층 짜리 건물의 건물주처럼 그나마 달성할 수 있는 부자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그럼 오늘은 집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재테크에 대한 열의를 불태워야 할까? 하루라도 빨리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는데. 하지만 창 밖을 보니 정말 날씨가 좋았다. 바람도 솔솔 불었고, 하늘도 맑았다. 어디론가 나가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은 날씨였다.


그렇게 ‘재테크 버닝’ 대신에 무작정 집을 나서기를 택했고, 어쩌다 보니 나는 머릿속에 전혀 없던 도서관에 들렀다. 물론 그게 ‘열심히 살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돌이켜봐도 만약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면 ‘이렇게 살아서 무슨 재미인가’ 싶었을 게 분명했다.


인생살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은 느슨하게 살아도 되려나. 반드시 계획대로 빡빡하게 살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필연으로 만들기보다는 때로 우연에 맡겨봐도 되는 게 인생이 아닐까? 아니면 역시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그러니 누군가의 부모가 된 지금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걸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Kritika Has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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