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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Jul 08. 2024

안녕, 나는 루나 엄마야

3개월 27일

루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정확히는 내 회사 동료들이 각자의 아기를 데리고 집에 왔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루나 ‘친구들’도 아니었다. 루나는 올해 초에 태어났지만 둘은 작년에 태어났으니 루나에게는 한 살 형들이었다.


형들인 만큼 깨어있는 시간도 루나보다 길었다. 두 명 중에서 먼저 도착한 다래(가명)라는 친구는 오는 길에 차에서 자고, 우리집 근처에서는 유모차를 타고 자다가 왔다. 그러다 현관 앞에 와서는 익숙한 듯이 기지개를 켜며 유모차 안에서 등장했다. 루나는 아직 한참 자고 있을 때였다.


다래는 거실 알집매트에 내려놓으니 알아서 앉았다. 맨날 바닥에 누워서 파닥거리던 백일 아기를 돌보던 나로서는 신기한 장면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앉는 아기라니? 마치 아크로바틱을 보는 기분이었다.


“다래야 안녕? 다래 안녕~? 이건 누굴까? 엄마야? 엄마 아니지? 나는 루나 엄마야. 만나서 반가워.”


계속 말을 거는 내가 신기한지, 아기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인사하는 사람을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를 ‘루나 엄마’라고 소개한 게 제대로 된 인사였을지 의문이 든다. 내 이름은 루나 엄마가 아닌데.




내가 어렸을 때를 떠올려봤다. 누군가가 스스로를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할 때, 그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나?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던 같다. 오히려 관계성 때문에 쿠션을 한 번 쳐서 애써 기억해야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아 저 사람은…… 그러니까, 철수……랑 연관이 있다는 거지? 철수의 엄마……’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내 이름을 먼저 알려줘야지.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을 아이 대하듯이 하는 방식보다는 최대한 어른 대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편을 선호하나 보다.


그런데 상상해보니 조금은 걱정되기도 한다. 루나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루나 친구들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고 있는 장면. “안녕, 나는 루나 엄마야”가 아니라, “안녕, 나는 에밀리라고 해. 루나 엄마란다.”하는 식으로.


아이들은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학부모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을까? 모종의 삿된 의도를 품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아이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려줄 리 없다는 듯한 의심의 눈초리들이 아른거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민트(가명)도 도착했다.


루나, 다래, 민트는 셋 다 남자아이였다. 희한한 일이었다. 어떻게 같은 부서에서 세 명이 다 남자아이가 나올 수 있지? 이러다가 애들 장가는 어찌 갈 지 살짝 걱정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기에, 나는 루나를 보며 얘기했다.


“루나야, 우리는 나중에 미국으로 가자. 그 나라에는 여자애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언니, 미국 가게?”


“그건 아니긴 하지만……. 유학이라도 보내야 하나?”


여자아이들이 모이면 좀 다른 모습일까? 이 시기의 영아는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이 그저 작고 귀여운 짐승일 뿐이라고들 하던데.


다른 엄마들을 많이 만나는 활발한 민트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래도 여자 아기들은 안았을 때부터 다르다고 한다. 남자아이가 목각인형이라면 여자아이는 봉제인형처럼 부드럽게 폭 안기는 느낌이랄까? 마치 강아지를 안으면 ‘생각보다 딱딱하네’, 고양이를 안으면 ‘액체인가?’ 하는 기분이 드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내 주위의 또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한 명 빼고 모두 아들맘 확정이었기에, 여자 아기를 만날 기회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들도 아들, 올해 태어날 아기들도 아들.


어쩌면 미국이든 어디든 정말 유학길을 고려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기 세 명과 함께하는 공동 육아는 예상보다 더 정신 없었다.


다래가 도착했을 때 마침 현관 앞에서 앞집 이웃을 만났는데, 그 때 이웃분께서 “오늘 공동 육아 하시나 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왠지 매일 반복적으로 만나서 아이를 키워야 공동 ‘육아’고, 그게 아니면 아기와의 나들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앗,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놀러왔어요.”라고 답을 해버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은 공동 육아가 맞았다. 셋이서 기어다니는 애 붙잡고, 이상한 뚜껑 못 먹게 입에서 빼내고, 기저귀 갈고, 토한 옷 갈아입히고 했는데. 이걸 과연 단순한 나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그 동안 내가 그려왔던 공동 육아는 이보다 훨씬 더 느긋한 모습이었다. 엄마들은 탁자에 모여 앉아서 다과를 즐기고, 애들은 매트 위에서 기든지 뒹굴든지 알아서 논다. 그러다 누가 게우면 닦아주거나 다른 애 장난감을 빼앗으면 중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중간중간 개입 정도만 하는, 그런 여유로운 모습.


현실은 역시 이상과 달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기들은 누구를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하긴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사람들인데, 어떻게 남을 배려하나? 이게 쌀뻥 과자인지 건전지인지도 모르고 일단 집으면 입에 가져가는 시기이거늘, 다른 아기를 보고 ‘아, 이 친구도 연약하고 조심히 대해줘야 하는 존재……’ 따위의 생각을 할 리 없었다.


그렇게 민트는 다래의 볼을 마치 촉감놀이 대상인 양 손으로 움켜쥐고, 다래는 튤립 사운드북 장난감을 들고 루나의 얼굴을 눌러봤다. 그 와중에 기동성이 하나도 없는 루나는 이게 다 뭔가 싶어하며 바운서에서 눈만 데록데록 굴리다가 “흐엥!”하고 울었다.


매트 위를 마음대로 기어다니는 아기들. 빠르기는 또 어찌나 빠르던지. 흡사 개구리와 올챙이가 연못을 휘젓고 다니는 카오스적인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지금 애가 한 명이기에 망정이지, 둘이면 정말 힘들겠는걸……’하는 감상이 머릿속에 절로 스쳐갔다.




아기가 셋이다 보니 정신이 너무 없어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도 미처 다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집 근처에 아기를 키우는 사람과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이참에 할 말도, 물어볼 것도 무척 많았다. 루나는 아직 3개월이라 어린이집을 안 가고 있었기에 주위에 아는 엄마들이 없어서 더더욱 하고픈 얘기가 많았다.


루나는 하루에 분유를 네 번, 180ml 정도씩 먹는데, 다른 아기들은 얼마나 먹을까? 다래랑 민트는 이제 200일이 넘어서 이유식을 하던데, 그럼 분유는 얼마나 먹고 이유식은 얼마나 먹을까? 이유식을 만들 때는 언제 어떻게 만들고, 시판 이유식을 고를 때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아직 루나랑은 동네 카페밖에 못 가봤는데, 아기 데리고 어디 놀러가 본 에피소드들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아무래도 주변에 비교 대상이 될 아기가 없이 루나 한 명만 보며 키우다 보니까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었고, 그만큼 궁금한 것도 많았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키우고 있는데, 다른 집은 어떻게 키울까? 엄청 중요하고 당연한데 내가 놓치고 있는 뭔가는 없을까?




다른 아기들과 한나절을 보내다 보니, 어깨 너머로 보면서 배우거나 알게 되는 것이 많았다.


일단 다래와 민트는 200일 아기들이라서, 이제 갓 백일을 지난 루나의 미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절반은 입 밖으로 삐져나오고 절반은 먹이는 고군분투라든지, 기껏 바지 입히려고 눕혀놨더니 금방 뒤집어서 기어가는 바람에 쫓아가며 입히던 모습이라든지.


패턴이나 행동도 루나와 사뭇 달랐다. 루나는 요즘 1시간 남짓 깨어 있으면 피곤해하며 울었는데, 다래와 민트는 훨씬 더 오랫동안 깨어 있었다. 졸리다는 표시도 루나는 울거나 눈 좀 비비는 게 전부였지만 둘은 더 힘차게 눈을 비비고 머리도 긁으면서 확실하게 표현했다. 트림도 루나는 세워서 토닥여줘야 하는 반면에 두 아가들은 앉아서 놀다가 알아서 트림을 했다.


특히 다래가 낮잠 자던 방식이 인상 깊어서 저녁에 남편에게도 들려주었다. 아직 루나는 잠투정을 하기 때문에 안아서 안정을 시켜주고 눕혀줘야 했다. 그런데 다래가 졸려하자, 다래 엄마는 “혹시 다래 재워줄만한 데가 있을까?”하고 물었을 뿐이었다.


“마침 남는 아기 침대가 저 쪽 방에 있어.”

“아기 침대가…… 남는 게 있어?”

“응. 울타리 쳐진 거. 너무 작아져서 범퍼 침대로 바꿔줬거든.”


그러고는 다래 엄마는 다래를 울타리 침대에 넣어놓고 방을 나왔다. “팔다리가 침대 울타리에 끼더라도 아프면 알아서 울 것”이라며,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이러면 그냥 알아서 자?”

“응. 모빌 보면서 혼자 있다가 잘 때도 있고.”

“모빌? 나는 루나가 모빌 보느라 잠을 못 자는 것 같길래 일부러 치워줬는데…….”


그렇게 하루종일 두 아기를 보며, ‘이것이 루나의 미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템들도 처음 보는 것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다래는 휴대용 젖병으로 분유를 먹었다. 분유를 젖병에 가루 넣고 물 넣어서 태우는 게 아니라 지퍼락같은 비닐 봉지에 담아다 섞고 젖병에 봉지째 끼우는 방식이었다. “이러면 젖병은 1개만 있어도 돼. 비닐봉지랑 젖꼭지만 몇 개 더 가지고 다니면 되거든”이라는 설명에 “호오, 그런 방법이?”하고 감탄했다.


한편 민트는 아기띠에 실려와서 나중에 낮잠도 아기띠에서 잤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아기띠보다 훨씬 굉장해(?) 보이는 제품이었다.


“이건 힙시트를 같이 쓸 수 있어서 엄마들이 많이 써. 아기가 10kg에 육박하면 엉덩이를 힙시트로 받쳐줘야 체중이 잘 분산되거든. 그러지 않으면 엄마 어깨에 무게가 잔뜩 실려.”


“무거운 책가방 메고 다니면 어깨 아파지는, 그런 거구나?”


“응. 나중에 애가 허리 힘이 생기면, 아예 아기띠 없이 힙시트만 써서 앉힌 다음에 손으로 좀 지탱해줄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손님들은 선물들을 주고 갔다. 다래 엄마는 이유식 때 먹일만한 쌀뻥 과자와 보리차를, 민트 엄마는 민트가 쓰던 육아템 몇 개를 건네주었다. 모빌을 건드리며 놀 수 있는 바운서, 고개를 좀 더 가누면 쓰기 좋은 점퍼루, 트레이에 붙여놓고 건드릴 수 있는 영아용 피젯 스피너, 아들들에게 국민템이라는 마이클 조던 옷.


앞으로 사흘에 한 개씩 꺼내면서 놀아주다 보면 시간이 또 훌쩍 지나 있겠지?




나는 민트 엄마에게 루나가 쓰던 신생아 용품들을 건네주었다.


민트야 루나보다 형이니까 이제 쓸 일이 없겠지만, 앞으로 민트는 동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루나가 신생아 용품들을 민트한테서 물려받았기에, 사실은 옷 몇 벌과 삼각 등받이 쿠션같은 것들을 더 얹어서 돌려준 셈이었다.


루나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육아용품을 사야 하는지 감을 잘 잡지 못했기에 고마운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어서 60사이즈 옷은 언제까지 입을 수 있는지, 어떤 종류로 몇 벌 정도 사야하는지도 아리송했다. 지금이야 <삐뽀삐뽀 119> 맨 뒷장에 있는 아기 개월별 표준 신장표를 보면서 ‘60사이즈 옷은 잘해야 여름까지 입겠군’하고 예측할 수 있지만 말이다.


신장이나 체중도 그렇고, 아기들은 신기할만큼 발달 단계를 정석대로 밟았다. 마치 누군가의 예언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컨대 ‘루나는 만3개월이 되면 까르르 소리내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식이었다. 신생아 때는 웃을 줄도 몰랐는데, 진짜로 아기는 그렇게 알아서 자라갔다.


아마 루나도 곧 다래와 민트의 월령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성장 지표들을 보여주겠지? “뿌우우” 하고 입으로 침을 튀긴다든지, 유치가 뿅 하고 난다든지, 트롤리에서 물티슈나 셀카봉처럼 엉뚱한 물건을 꺼낸다든지.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다시 루나랑 단 둘이 남았다.


이런 날이 없었는데, 루나는 결과적으로 거의 하루종일 아기띠에서 낮잠을 자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기가 세 명이면 셋 중 하나는 깨어 있었고, 자고로 깨어있는 아기는 괴성을 지르는 법이었다. 사진만 보면 세 명 모두 천사처럼 까르르 웃기만 할 것 같은데, 현실의 아기들은 일반적으로 “우우우!”라든지 “끼야악!” 같은 원초적인 소리를 냈다. 그나마 아기띠로 엄마 품에 폭 안겨 있으니 잠들었지, 그러지 않고서는 나같아도 편히 잠들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아기띠라는 게 원래 낮잠 자라고 만든 물건이 아닌데다가 이래저래 주변 소음도 심했기에, 루나는 아기띠에서도 한 번에 30분 남짓밖에 자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가 평소 자던 낮잠의 절반도 자지 못한 채로 하루가 지났다.


그러고 보면 깨어 있을 때도 평소와는 다르게 집이 몹시 어수선한 상태였다. 어쩌면 루나에게는 청천벽력같은 하루였을 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들이 잔뜩 오고, 온종일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게다가 자기랑은 다르게 체격도 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집었다 놨다 하는 형들 사이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기도 했다.


결국 이 날은 저녁 낮잠도, 밤잠도, 남편이 재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아이는 엄청 울며 보챘다. 피곤해서 잔뜩 찌푸리고 난처한 표정에, 끝없이 “아아아……”하고 목청껏 울던 아이.


낮잠은 내가 소파에서 1시간 동안 안아 재웠고, 밤잠도 동화를 읊어주며 한참 동안 같이 있어주고 나서야 아이는 잠들었다. 둘 다 남편이 재워주다가 내가 막타충(?)처럼 등장하긴 했지만.




온종일 아기 셋과 지내고 맞이하는 저녁에는 나도 체력이 방전되어 있었다.


아이 밤잠 입면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멍하니 부엌 창 밖을 보면서 하루 동안 생긴 아기 설거지거리를 닦았다. 괜히 아이에게 미안해져서는 세제도 평소보다 한 번씩 더 펌핑했다.


가만히 서서 공갈젖꼭지를 닦고 있다 보니, 요즘 나의 육아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리 친정 어머니와 남편의 도움을 잔뜩 받으며 아이를 돌보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언젠가 회사 동료분께서 해주셨던 말처럼 “육아라는 이 프로젝트의 PM은 나”였다.


오늘 보니까 다래는 혼자서도 잘 자던데, 나도 루나가 혼자 입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줘야 할까? 루나는 낮이건 밤이건 옆에서 누가 손을 잡고 쓰다듬어주어야 잠이 들고, 그러지 않으면 잔뜩 보채다가 완전히 깨어버렸다. 게다가 백일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밤에 두세 번씩은 깨서 쪽쪽이를 물려줘야 다시 잠들곤 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어서 통잠을 못 자는 걸까?


밖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직은 동네 카페를 아침에 잠깐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나름대로 장족의 발전으로 여기고 있는데다가 하루 한 번씩 바깥 산책을 하면서 기분전환이 되어서 무척 즐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베이비 카페나 키즈 수영장도 있었고, 스타필드 같은 쇼핑몰은 아기 엄마아빠로 한가득이었다.


더 씩씩하게 마음을 먹고, 나도 루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봐야 하는 게 아닐까? 분유포트와 젖병 소독기, 여벌 옷이 편리하게 비치되어 있는 집에만 안주할 게 아니라, 아기와의 여름 휴가 같은 것도 좀 생각해보고 하면서…….




“어른들 대화를 하루 대여섯 시간 들려줘야 한다던데, 엄마들 모임도 안 가고 그래서 걱정이야.”


낮에 털어놓았던 고민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말에 민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오후에는 친정 엄마랑 얘기하고, 아침저녁으로 남편이랑 얘기하잖아? 그럼 괜찮지 뭐~”


그러고 보면, 오늘 낮에 손님들과 육아 이야기를 하면서 언뜻 ‘모든 가정의 육아 스타일은 다 다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매트 위에서 놀게 하면서 내가 “그래도 나름 물티슈로 다 닦아놓았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그에 다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도 아직 매트는 매일 닦긴 해……”라고 얘기했다. 세 명 모두 속으로 ‘얘기는 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이 중에서 누군가가 안 닦을 수도 있으니까 지적하는 투가 되고 싶지는 않은 걸……’하고 걱정한 모양이었다.


육아에서 집집마다 다른 게 어디 매트 청소 뿐이랴. 이유식도 시판 이유식을 사다 먹일지, 아니면 집에서 직접 만들지가 갈렸다. 이유식 전에는 분유수유와 모유수유로 갈리고, 심지어 출산부터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로 갈렸다.


어쩌면 이는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끝나지 않을 구도였다. 어린이집을 일찍 보낼지, 아니면 최대한 늦게까지 가정보육을 할 것인지. 유치원은 영어 유치원을 보낼지, 일반 유치원을 보낼지. 조기교육을 시킬지,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할 지. 일반고를 보낼지, 특목고를 준비 시킬지. 대학은 국내로 보낼지, 해외로 보낼지, 아니면 아예 제3의 길을 찾게 할 것인지.




육아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만이 유일한 정답이었다.


유치원만 해도, 따지고 보면 내가 어렸을 때는 영어 유치원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혹은 존재했어도 내가 몰랐던 셈인데, 그래도 외국어 고등학교도 가고 교환학생도 다녀오면서 할 것은 다 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이후에 아이 앞길 막는 사태를 방지한다’라는 식의 육성 공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거지 거리에 묻은 거품과 함께 ‘내가 지금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훌훌 씻어 내렸다. 이러나 저러나, 요즘 아이가 나를 보기만 해도 웃는 것을 보면 어쨌든 내가 아이에게 중요하고 곁에 있어주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대체로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아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오늘도 엄마로서 아이와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 내일도 아이랑 재미있게 지내야지.’


밤에 침대에 누워서,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어쩌면 나는 아이 덕분에 단순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 자신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기고 지우게 될까 두려웠는데, 나는 오히려 나의 삶을 더 깊고 넓게 살아갈 계기를 맞이한 것 같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onathan B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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