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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Feb 26. 2024

오늘도 일회용입니다


몇 년 전 동네 도서관에서 에세이워크숍을 들을 때였다.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찐하게 들이켰다. 마지막까지 본분을 다한 얼음이 남긴 찬 이슬을 입안으로 툭툭 털어내고 정수기 옆에 놓인 세 개의 쓰레기통 앞에 섰다. 일반쓰레기/플라스틱/종이 등 종류별로 놓인 분리수거함에 컵을 버리려 고개를 숙여보니 정수기 앞쪽으로 납작한 일회용 물컵이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툭- 

누군가의 무심한 손길에 헛헛하게 허공을 잠시 비행하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이었다. 차가운 물 맛 한번 느껴보지 못한 채 한낱 종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손에 든 쓰레기만 버리고 그냥 지나치려다 주저앉아 툴툴거리며 떨어진 일회용 종이컵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많이도 떨어트렸네"

대략 일곱 여덟 장 되어 보이는 일회용 컵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고 계단을 내려오다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누군가의 무심한 손길을 욕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손이 급해진다. 얇고 가벼운 종이컵 하나 꺼내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엄지와 검지 끝을 모아 하나를 뽑으려 해도 이내 두 세장이 딸려 나온다. 내 손에 들린 몇 장의 종이컵을 다시 넣기도, 정수기 위에 올려놓기도 찝찝한 마음에 내 손에 든 여러 장의 종이컵을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땐 '어차피 버릴 거 내가 쓰고 버리는 게 낫지' 하며 종이컵마다 물을 조금씩 나누어 마시며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보곤 한다. 


너무 가벼워서일까, 

아니면 한 두장쯤 버려도 상관없다는 우리의 무심함 때문일까, 

너무나 얇게 만든 제조사를 탓해야 하는 걸까,

아무렇지 않게 뽑힌 일회용 종이컵의 일부는 정수기 위에 올려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닥에 떨어진 채 누군가에게 밟혀 찢기곤 한다. 그렇게 쓸모를 빼앗긴 존재가 된다.

바닥에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진 일회용 컵을 보자 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대체가능한 사회구성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 것이다. 수많은 취준생들이 한 번쯤 한숨을 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사회에선 **을 할 사람을 찾는다. 

우리와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지만 귀사의 파트너인 듯 포장된 무기계약직, 이번 프로젝트만 함께할 정함 있는 근로, 일일근로까지 이 세 가지를 다 경험해 본 나는 대체가능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아쉬운 건 너'라는 사회의 부조리에 마음의 고초를 겪던 때여서 그랬는지 떨어진 일회용 컵이 나 같아서 헛헛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떨어진 종이컵에 마음을 쓰던 그날의 기억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물론 그때처럼 일회용 물컵에 내 존재가치를 투영하며 한숨을 쉬는 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나의 수고와 당연시 여겨지는 나의 노력 누군가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쏟아져 내리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고 N잡을 갖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내는 시대, '경제활동인구'라는 수치화된 말로 불리는 것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이 더 가치 있게 여겨졌으면 좋겠다. 


어떤 일을 하든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기를, 

스스로를 너무 비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나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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