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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Mar 11. 2024

하나의 우주, 소중한 빛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그럼에도 그날들에만 꿀 수 있었던 꿈을 나는 잊지 못한다. 

(...) 그런 나날의 반복,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쌓이고 쌓이면 소중한 덩어리가 된다. 

-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어떤 음식을 먹거나 낯선 공간에서 문득 누군가가 떠오를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나에게 나빴던 사람들보다 소박한 일상을 함께 채워간 소중한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 함께 처음 먹었던 음식, 어리숙하고 수줍었던 어느 날의 대화가 먼 시간을 지나 내 앞에 다시 펼쳐지곤 한다. 세상에 모든 곳에 타임캡슐이 묻혀있다. 과거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날의 기억은 언제나 머리와 가슴에 닿는다. 


소울푸드가 유행처럼 매체에 많이 등장하던 때가 있었다. 무한도전 <쉼표특집>에서는 소울푸드를 주제로 마니또를 했고 <배달의 무도>에서는 타국에 사는 한국사람들에게 '소울푸드'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나의 소울푸드는 무엇인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떠오르는 음식은 많았지만, 소울푸드에 담긴 의미가 너무 강하게 느껴진 탓에 쉽사리 무엇 하나를 꼽을 수 없었다. 


급식 먹기 싫을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었던 김치버터라면, 초등학교 앞 피카츄꼬치, 가족과 여행 갈 때 먹었던 휴게소 알감자, 영국에서 처음 먹어본 두꺼움 감자튀김, 엄마의 김치찌개, 가족행사 단골식당 송추갈비까지 다양한 음식을 떠올리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내가 사랑한 음식들이 바로 어느 날의 기억들이라는 것이다.

소울푸드에는 시절이라는 양념이 배어있다.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어느 날 어느 공간'에서 만난 음식일 때가 많다. 그래서 더 그립고 소중하다. '그때 그 맛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날에만 그날이었기에 특별했을 맛이기에 우리는 매 순간 더 애틋하게 살아가야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은 소소한 음식에 담긴 저자의 에피소드를 그린 그림책이다. 사랑하는 이와 아버지, 자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식구의 의미를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나의 식탁에 마주 앉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에 없었던 존재가 다가온 순간부터 그가 떠날 날을 상상하는 저자의 마음을 따라 읽다 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그려보게 된다. 특별한 음식을 먹어서가 아닌 함께 나누었던 음식이 있었기에 매 순간을 더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울푸드가 없어도 괜찮다. 특별한 하나의 음식보다 소중한 이들과 나눈 음식 하나하나 떠올릴 수 있다면 일상의 소소한 빛을 더 촘촘히 채워간 것이리라.


우리는 하나의 우주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우주에 일상이라는 별을 수놓는다. 빙그레 짓는 미소는 잔잔한 빛을 가진 별이 된다. 특별한 이벤트는 별똥별이 되어 유난히 빛나고 아름답게 기억되지만, 소소한 일상의 별은 쉽게 잊히곤 한다. 마치 원래 암흑 속에 살았던 것처럼 행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우주는 언제나 거대했고 크고 작은 추억과 미소, 일상의 행복이 별이 되어 나의 삶을 맴돈다.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 나의 세계는 언제나 빛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인생은 참 멋지다고, 허망한 것은 무엇 하나 없다고.


나의 삶이 불행하다 생각된다면 너무 밝은 세상의 빛 아래 서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타인의 아름다움에 나를 비추면 내 안의 빛은 사라지고 만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요로 들어가면 아주 옅게 빛나고 있는 작은 빛부터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밝기만 다를 뿐 우리는 행복과 감사와 추억의 빛을 쌓아두고 한다.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우주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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