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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08. 2021

응후, 천하통일로 성큼 내딛다

부국강병일통천하4

진소양왕 역시 진나라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활약했던 무장으로 백기가 유명하다. 그는 수많은 전장에서 연전연승을 이루었으며 그만큼 수많은 병사를 죽이기도 했다. 그가 조나라 장평에서 40만이 넘는 숫자를 죽인 이야기를 앞서 살펴보았다.


그렇게 전장을 누비던 백전노장이었으나 끝은 결코 좋지 않았다. 응후 범수에게 밀려 결국은 스스로 자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무안군(백기)이 길을 나서 함양의 서문에서 10리 거리에 있는 두우에 이르렀을 무렵, 진나라 소왕은 응후와 다른 신하들과 상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기는 사는 곳을 옮겨 가면서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고 뼈 있는 말을 했소."

진나라 왕은 곧 사자를 보내 무안군에게 칼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무안군은 칼을 받아 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파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백기왕전열전>


무안군을 해치운 응후 범수 역시 본래 위魏나라 사람이었다. 그도 상앙처럼 처음에는 위나라에서 자리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위나라에서 변변한 지위를 얻지 못하는 데다 도리어 사소한 오해로 맞아 죽을뻔하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제나라가 그에게 보화와 고기, 술을 보낸 데서 시작한다. 제나라는 범저를 초빙하고자 했으나, 범저는 이를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재상이었던 위제는 범저가 제나라에 위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어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심하게 그를 매질한다. 게다가 거적때기에 말아 변소에 던져놓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가며 오줌을 누어 그를 욕보였다. 


그러나 범저는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여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당시 진나라의 권력은 소왕의 외삼촌 뻘인 양후 위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범저는 소왕을 만나 진의 형세가 왕업을 닦기에 좋은 상황임을 알려주고 원교근공遠交近攻의 방책으로 동쪽으로 진출하자고 설득한다. 한편 외척세력을 척결하고 강력한 왕권을 다지도록 한다. 아래는 소왕을 설득한 범저의 말이다.


“신은 산동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전문이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제나라 왕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대체로 나랏일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사람에게 이익과 해를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하며,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위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태후는 왕을 돌아보지 않고 나랏일을 마음대로 처리하고, 양후는 다른 나라로 사신을 보내면서도 왕께 보고하지 않으며, 화양군과 경양군은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도 왕을 꺼려하지 않고, 고릉군은 사람을 마음대로 나아가고 물러나게 하면서도 왕의 허락을 청하지 않습니다. 이런 네 종류의 일이 있는데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 최저와 요치는 제나라 국정을 맡았는데 최저는 군주인 제나라 민왕의 넓적다리를 쏘았고, 요치는 민왕은 늑골을 뽑아 종묘의 대들보에 밤새도록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태는 조나라 국정을 장악하자 주보를 사구에 가두어 백일 만에 굶어 죽게 했습니다.

… 지금 왕은 조정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신이 왕을 위해 염려하는 바는 만대 뒤에 진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왕의 자손이 아닐 것 같다는 점입니다.”

<범저채택열전>


왕은 나라의 권력의 중심이자 독립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위엄이 있어야 하며, 권력을 그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범저가 진왕에게 말한 독립된 왕권의 특징이다. 그러면서 섬뜩한 이야기를 한다. 최저의 집에서 죽음을 맞은 민왕과, 궁에 갇혀 굶어 죽은 조무령왕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진왕도 이런 참혹한 최후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진왕은 외척 세력을 척결하고 강력한 왕권을 세운다. 이 소양왕의 아들이 효문왕인데 아버지의 상례를 치르고 상복을 벗은 뒤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게 자양왕 자초였고 그가 바로 진시황의 아버지였다. 따라서 진시황의 통일은 소양왕 때의 왕권강화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소양왕은 범저를 매우 아꼈다. 숙부와도 같은 존재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주문왕에게 여상이 있었고,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었듯이 자신에게는 범저가 있다고. 이처럼 군왕조차 높이 떠받드는 인물이 되었으나 그는 진나라에서 범저라는 이름 대신 장록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넘어오면서 쓴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덕분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시 위나라는 한나라의 공격을 막고자 수고를 진나라의 사신으로 보낸다. 수고는 과거 범저를 식객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앞서 범저가 욕된 상황을 당한 것도 바로 이 수고 때문이었다. 수고가 사신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범저는 일부러 낡은 옷을 입고 몰래 숙소를 찾아간다. 수고는 범저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솜옷 한 벌을 내주고는 진나라 재상 장록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묻는다. 범저는 자신의 주인이 장록과 잘 안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범저는 집에 도착하여 소식을 전하겠다는 핑계로 먼저 집에 들어간다. 한참을 기다리다 수고는 범저의 행방을 묻는데 알고 보니 그가 장록이었다! 범저의 이 치밀한 복수에 수고는 무릎으로 기어 범저 앞에 나아가 죄를 빌 수밖에. 다행히 솜옷을 내어준 옛정 덕택에 범저는 수고를 살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사신을 송별하는 큰 잔치를 벌여서는 수고를 대청 아래 죄인들과 함께 앉혀놓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죽을 주었다. 진나라 재상이 된 그를 어떻게 저항할까. 수고는 하는 수없이 그 말죽을 먹어야 했다.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응후 범수는 이렇게 진소양왕을 보좌하며 진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다. 이제 진의 통일이 코 앞에 와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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