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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15. 2021

변소 쥐와 창고 쥐

제국을 열고 만세를 꿈꾸다 1

이사는 한비자와 더불어 순경荀卿, 즉 순자荀子의 제자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한비자를 시기하여 그를 죽게 만들기도 했다. 한비자는 일찍이 '역린'을 이야기하며 군주를 조심해야 한다 말했으나 시기심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노자한비열전>을 참고하자. 


용이라는 벌레는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용이] 죽인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한 유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한비열전>, 김원중 역


사마천은 이사가 순자에게서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의 기술을 배웠다고 말한다. 훗날 법가의 인물로 손꼽히는 한비자와 진나라의 승상에 올라 법가의 제국을 이룬 이사가 모두 순자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이다.  


순자는 맹자와 더불어 공자의 뒤를 이은 초기 유가의 인물이 아닌가. 이른바 도통론道統論, 도道가 특정 인물을 통해 전승되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순자는 도통 밖의 이단異端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유가를 보면 공자와 맹자, 주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자 역시 예악을 이야기하는 유학자였다. 그가 말하는 예악이 어떻게 이사와 한비자의 법가를 낳았을까.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는 이 둘, 유가와 법가의 관계를 지나치게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옳지 않다는 점만 짚어두자.


유가는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치는 것을 중시했다. 이사가 순자를 찾아간 것도 출세를 위해서였다. 이사는 초나라 출신으로 낮은 관직을 전전할 뿐이었다. 그는 어느 날 쥐들을 보고 성공을 꿈꾼다.


그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로구나."

<이사열전>


하물며 쥐도 저럴진대 사람은 또 어떻겠는가. 지위와 재물에 초연하여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이 타인을 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변소 쥐 같이 살지는 말아야지. 이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영화 <기생충>의 대사이다. 저 대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쪼들리는 삶은, 얼굴에도 마음에도 구김살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사의 욕망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그는 진나라를 선택한다. 진은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상앙, 장의, 범수 등은 모두 타국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성공하려면 진나라로 가야지 마음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당시 제후국들의 폐쇄성을 잘 보여준다. 이사는 왜 낮은 관직에 머물러 있었을까? 상앙은 왜 위나라에서 아무런 관직을 얻지 못했나. 장의와 범수는 매질을 당하고 쫓겨났나. 재능있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능있는 이들을 등용하는 진나라가 이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한편 진나라는 이미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진나라의 상승세를 올라타 한번 이름을 날려봐야지. 이사가 포부를 품고 진나라로 떠나기 전 스승 순자에게 남긴 말을 보자.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


성공을 꿈꾼 이사는 여불위를 찾아간다. 천금으로 임금을 만들고 재상의 자리에 오른 여불위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장양왕이 죽은 상황. 진왕 영정은 아직 어렸고 여불위가 나라의 실권을 쥔 상황이었다. 


이사는 진왕을 만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나라의 힘이 육국을 압도하는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또한 주나라 왕실이 힘을 잃었다. 새로운 대업을 꿈꿀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천하를 손에 넣자. 


이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뇌물을 뿌려 이웃 나라의 실력자들의 환심을 샀다. 뇌물이 통하지 않으면 자객을 보내 그를 죽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계책을 내어 임금과 신하 사이을 이간질 했다. 백기와 같은 장수가 전장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이사와 같은 인물이 막후에서 활약했던 까닭이다.


진나라의 위협에 다른 나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계책에는 계책으로 맞서는 법. 한나라는 정국이라는 인물을 보내 진나라의 국력을 낭비시키는 꾀를 낸다. 큰 운하를 파게 하여 나라를 어지럽게 흔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머지않아 들통나고 만다. 그러나 불똥이 영 엉뚱한 곳을 튀고 만다. 진나라의 왕족과 대신들이 이 기회를 타 타국 출신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국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 타국 출신의 인물이 내놓는 계책은 사실 출신국의 이익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 통찰력이 부족했던 까닭일까? 진왕은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타국 출신을 모두 내쫓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른바 축객령逐客令! 의도치 않게 한나라의 계책은 진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앞서 보았듯 진나라의 빼어난 재상들은 모두 타국 출신 아니었던가. <상군열전>이나 <범수채택열전>에서 볼 수 있었듯 진나라의 기존 권력층과 타국 출신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진나라의 주요 개혁은 모두 타국 출신의 주도로 진행되었는데, 진나라도 다른 제후국과 마찬가지 전철을 밟는 것일까? 그리고 이사의 꿈도 좌절되는 것일까? 


이사는 한 편의 글을 올려 진시황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그는 목공이 백리해를 등용했던 일, 효공이 상앙을, 혜왕이 장의, 소왕이 범수를 등용했던 일을 언급한다. 여기에 우리는 다른 짝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과 이사. 그러나 이것뿐이었다면 이사는 제 안위를 생각하는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왕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부족했을 터. 그는 새로운 비전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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