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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랑을 낳았나 보다.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유전자의 힘이란

응급 제왕절개를 마치고 나온 나는 처음으로 아들의 얼굴을 봤다. 비몽사몽으로 아가를 봐서 정확히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네가 내 뱃속에 있었구나. 신기했다. 그래서 신랑에게 물어봤다.


"아가는 누구 닮았어?"

"눈을 감고 울어서 잘 모르겠어"


입체 초음파를 보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관심은 아들의 얼굴이었다. 얼굴을 항상 손으로 가리고 있어서 손을 치우면 뚱한 표정이 영락없이 신랑이었다. 신랑은 자신을 닮은 것 같다며 아주 좋아했었다. 그런 아가가 자신의 모습을 처음 드러냈을 때, 신랑은 너무 신기해했다.


제왕절개 수술로 하루는 꼬박 누워있어서, 다음 날에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신랑은 주어진 면회시간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누워서 같이 봤다.


"인중이 진한걸 보니 입은 나를 닮았는데, 나머지는 모르겠어"


정말이었다. 인중이 진하고 입술은 영락없이 신랑을 닮았었다. 눈도 크고 코도 컸지만, 나와 신랑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쌍꺼풀이 진한 큰 눈인 반면 신랑은 속 쌍꺼풀이 있는 적당한 눈이다. 아들의 눈에는 쌍꺼풀이 없는 걸 보면 신랑눈 인데 눈이 커보여서 신랑의 눈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다음날 수유를 하러 가면서 처음으로 아들을 만났다. 너무 신기했다. 이 작고 귀여운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다니. 잘 보니 눈썹, 인중과 입술로 영락없이 신랑이었다.  하지만, 보자마자 누굴 닮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조카나 친구의 아가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누구 닮았다.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크고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갔다.


코로나로 인해 모자동실은 되지 않았고, 신랑이 면회하는 시간에는 아들이 거의 자고 있어서 자는 모습만 봤었다. 신랑은 내가 찍어온 사진을 보고서는 눈썹이랑 입술은 자기 꺼라면서 좋아했다. 아들을 낳고 나서 주변에 사실을 알리자 다들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우리와 비슷했다.


나의 지인들은 다들 아빠를 닮은 것 같다고 했고, 신랑의 지인들은 다들 엄마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둘을 다 아는 지인들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시댁에서는 나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누구를 닮은 지 모르 겠다는 반응이었다. 친정에서는 나는 안 닮았고, 신랑도 안 닮았고,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2주가 지나, 집으로 아들과 돌아왔다. 실물을 본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반응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잘 생겼다.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는데, 술이랑 눈썹은 아빠 구만. 커봐야 누구 닮았는지 알겠다."

우리는 예쁘게 잘 섞여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1달이 지나, 살이 포동포동 찌자, 가족들이 아들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이서방, 왔는가?"

언니는 "제부. 왔어?"

시어머니는 "우리 아들. 왔어?"

시누이의 신랑분께서는 "처남, 일어나 봐"


아들은 한눈에 봐도 신랑과 똑같았다.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다던 지인들도 다들 신랑과 똑같다고 했다. 왜 처음에는 몰랐을까? 생각하던 중 번뜩 생각이 났다. 신랑에게 인생에서 가장 날씬했다던, 내가 모르는 그 20대 중반 사진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혹시나 했는 데, 역시나였다. 아가는 막 태어났을 때, 누구 닮았는지 몰랐던 그 얼굴은 신랑이 가장 날씬했을 때의 얼굴이었던 것이었다. 


신랑은 그 이후로는 살이 계속 쪘었기 때문에, 10년이 넘게 지난 이후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었다. 하루는 시누이 집에서 공동육아를 하고 있었다. 시누가 아들은 재워준다고 안고 있다가,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어머, 귀가 우리 동생 귀네. 귓바퀴가 좀 특이하지"


귀도 닮았구나. 하루는 신랑한테 아들 발톱이 긴 거 같으니 분유를 먹이는 동안 잘라달라고 했다.


"내성발톱이네~"

"그게 뭔데?"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거, 내가 내성 발톱이거든 "


연애 5년에 결혼 2년 동안 처음으로 신랑의 발톱이 내성발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친정식구 중에 내성발톱인 사람은 없기에 들어만 봤지. 보긴 첨이었다. 신랑은 손도 한동안 보더니 내성 손톱일 거 같다며 나에게 손톱을 길러서 잘라줘야 한다고 했다. 굴만 닮은 게 아니라, 손, 발, 귀까지 닮다니. 


겉모습만 닮은 게 아니었다. 잠버릇이랑 습관까지도 신랑과 같다. 한 번은 아들이 눈을 감고 울고 있었다. 잠이 오는 것 같은 데 달래도 울었다. 신랑이 빤히 보더니 가재 수건을 접어 눈에 덮어 줬다. 울음을 그치더니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낮에도 어두워야 잠을 잤어. 그래서 덮어 봤지. 역시 내 분신"


가끔은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면, 둘이 같은 포즈로 자고 있을 때가 있다. 잠버릇까지 같구나.


임신했을 때.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주변에서는 첫아들은 엄마 닮는다고들 했다. 그때, 나는 신랑을 닮은 주니어를 간절히 바랬는데 이렇게 신랑만 닮을 줄이야. 


내가 품고 낳았는데, 그래도 나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 싶어, 한참을 봐도 신랑판박이다. 그래도 뭔가는 나와 닮았을까 싶어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한테 물어본다.


"우리 아들은 나 어렷을 때랑 닮은 거 없어?"


"아니, 너랑은 하나도 묻은 데가 없어. 이서방이랑 똑같애.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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