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한쪽 어깨는 핸드폰 거치대로, 다른 쪽 어깨는 독서대로 옆 사람들에게 모두 내어주고 선로를 따라 하염없이 흔들리는 아침. 떠나고 싶다.
가로수가 늘어선 비 갠 거리. 푸르고 촉촉한 나무 냄새가 들숨을 타고 폐부 깊숙이 흘러들 때. 한 줄기 바람이 싱그러워 잠깐 눈을 감고 싶어질 때. 물론 떠나고 싶다.
점심시간. 밥 달라며 먀오먀오 부르던 고양이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으면, 그 녀석이 있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보고 싶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건대입구역 2호선. 바깥으로 난 해 지는 붉은 하늘에 감탄하며, 그래, 정말 아주 잠깐은 떠나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해찰하는 셈 치고 뚝섬유원지역에 찾아가 일렁이는 물살에 마음도 함께 일렁이도록 두다가, 그냥 그대로 더 멀리 떠나고 싶다.
왼쪽은 인쇄소에 살던 고양이, 가운데는 건대입구역 안에서 바라본 노을, 오른쪽은 뚝섬유원지. (c) 2016.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너무 먼 그림자만을 좇으려 떠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다는 막연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또 아니지만.
다만, 가끔은 멀고 먼 낯선 풍경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좋은 바람에 아무렇게나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도록. 그렇게 두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더 튼튼한 핸드폰 거치대와 더 튼튼한 독서대 노릇을 퍽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가지런한 일들에 조바심치던, 애써 노력하던 마음을 헹구어내듯 비 오는 거리를 마음껏 걷고 싶어서다.
부러 잘 보이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먀오먀오 말을 거는 고양이를 기다리고, 어쩌다 한 번은 노을에 물드는 하늘과 강을 찾아 보통은 멈추지 않는 지하철역을 헤매는 평범한 일상도 퍽은 괜찮다는 덤덤하지만 넉넉한 미소도 지을 수 있도록, 그렇게. 아, 아, 떠나고 싶다. (계속)
부안과 군산을 잇는 새만금 고속도로 그 어딘가. (c) 2016. 신상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