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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발 Oct 31. 2020

비틀스와 어제를 소환하는 밤

All you need is love

스무 살, 내 손으로 직접 번 돈으로 처음 산 물건은 휴대용 CD 플레이어였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사준 CD플레이어는 지금 생각해도 흥미롭다. 몸체 양쪽으로 스피커가 분리되어 있고, CD플레이어는 그 가운데 붙어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일명 워크맨)를 따로 분리해 휴대할 수 있다는 것. 그걸 떼서 학교에 가지고 다니며 영어랑 국어 듣기 평가 문제도 풀고, 자습하거나 등하교하며 팝송을 듣기도 했다.


이 녀석은 집에 두고 서울로 올라왔기에 한동안 음악 듣기가 영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데스크톱과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듣는 게 전부였다. 답답했던 나는 첫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자마자 곧장 용산 전자상가로 달려갔다. 케이스 윗부분이 투명해서 CD가 뱅글뱅글 도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는 걸로 골랐다. 눈으로도 음악을 듣는 듯했다.


그러다 얼마 안 있으니 MP3  플레이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껌 한 통 정도 되는 크기라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꽤 힙한 대학생의 상징이었다. 나는 또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냉큼 MP3 플레이어를 샀다. 이번엔 인터넷으로 사고 배송받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소리바다에서 다운로드해 MP3로 처음 옮기던 그때의 그 기분이란!






이사한답시고 물건을 정리한다면서 한동안 이렇게 추억놀이에 퐁당퐁당 빠져있었다.


보물 찾기가 따로 없었다. 오래된 일기장, 친구들이 보내준 엽서와 편지, 못다 버린 옛 남자 친구의 편지(그때는 브레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반성문), 필름으로 인화한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학교 다니면서 받은 상패들....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옛날을 두리번거렸다. 지나고 보니 그때 참 행복했었구나 싶었다.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되겠지.



왼쪽은 비틀스의 <1(One)>, 오른쪽은 <애비로드(Abbey Road)> 앨범 커버.



책장 맨 꼭대기에는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두곤 했다. 깨금발을 들어야 손이 닿는 자리. 쓰지는 않으나 버리자니 주저하게 되는 물건들을 두기에 딱이었다. 다행히(?!) CD 플레이어는 모두 버렸지만, MP3플레이어는 한 개 남아있었다. 스물한 살에 촬영한 6mm 단편영화 필름과 좋아하는 영상을 떠둔 비디오테이프와 MP3 플레이어가 나오기 전에 산 CD 같은 것들. 이제는 모두 놓아주어야 할 때였다.


유독 재킷이 닳고 낡은 CD도 있었다. 비틀스다.

내게는 무슨 의식을 치르기라도 듯 매년 비슷한 시기에 반복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무더위에 지쳐 첫 얼음을 얼리는 날에는 보사노바를 틀고, 첫눈이 오는 날이면 기형도를 펼친다. 이따금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비틀스의 편집 앨범 < 1(One)>을 걸고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따라 부르는 일도 그중 하나다.


"All you need is love. Love is all you need."

필요한 게 오직 사랑이라니! 존 레넌을 뛰어넘는 로맨티스트가 세상에 또 있을까. 연애감정에 유독 긴장하던 대학생 때는 이 노래만 들어도 설레곤 했다. 특히, 마지막에 <She loves you>란 곡의 한 소절이 살짝 엿보이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설렘이 팡팡 터져버렸다. 네게는 사랑이 필요하고, 그녀는 너를 사랑해. 여기서 부족한 게 무어겠는가.



책장이 없어서 줄곧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눕힌 대로 누워있는 책들. 조만간 책 얘기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비틀스에 대한 추억으로는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엄마한테서 처음 배운 <Yesterday>. 엄마는 티브이에서 잠깐 노래가 흘러나오면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던 것 같다. "예스터데이, 올 마이 트러블스 심 소 팔 어웨이." 엄마가 한글로 적어준 가사를 따라 열심히 연습하던 꼬맹이가 거기에 있다.


한참 이렇게 추억을 소환하며  과거로 여행을 하다 보니, 리듬에 몸을 맞춰 흐느적거리고 싶다. 거대한 스피커가 드럼 비트에 맞춰 발 디딘 바닥까지 두근거리게 만들 텐데. 혹은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목이 쉴 때까지 떼창을 하고 싶다. 가수와 밴드와 곁에 선 모든 이들과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묘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아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오래된 노트북을 꺼내 CD를 걸었다. 첫 곡은 <Love m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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