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추억의 단편

메타세쿼이아 나무에게

by 무쌍



이른 아침부터 탕탕거리며 사다리차가 아파트 난간에서 이삿짐을 옮기고 있어. 우리 부부가 이곳으로 이사 오던 때가 떠오르네. 살던 집이 팔리자, 쫓기듯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했어. 1년 넘게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었거든. 그래도 운 좋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이 집을 계약하게 되었단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가 대출을 받아 구한 첫 전셋집이었어. 젊고 꿈이 많았던 시절이었던 우리의 첫 시작을 상징하는 집이었단다. 두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말이야. 아이가 있다는 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마음을 더 단단히 먹었을 텐데 말이야.


우리가 살게 된 아파트 뒤에는 작은 동산이 있었고, 앞은 감나무와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었어. 단지 안에는 너와 단풍나무, 모감주와 산수유, 모과나무들로 빽빽하게 숲을 이루었지.

도심 아파트가 집이지만, 운 좋게 너와 너의 친구들이 사는 곳에 살게 되었단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너희들도 수령이 20년 가까이 되어가니, 마치 작은 숲처럼 단지 안은 울창해졌단다.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집에 들어서는 길은 늘 녹음이 우거진 너희들이 있었단다.


외출하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언덕이 가팔라서, 심호흡을 몇 번씩 하게 한단다. 특히나 아이들 등하교 길은 꼭 언덕길을 지나야 했거든. 그때마다 아이들은 금방 쓰러질 것처럼, 엄마인 내 몸을 잡아 끌어당기며 힘겨워하지. 평지가 나올 때까지 아이들의 심통 내는 시간은 피해 갈 수가 없단다. 잠깐의 아이들과의 소동이 끝나면, 아이들은 정문 대신에 뒷문으로 이어진 너희들의 보금자리인 작은 숲길을 선택한단다.


담쟁이덩굴

그곳으로 들어서면 액자처럼 뚫린 문이 보인단다.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듯 그 문에 들어서면, 상가 벽면을 초록으로 뒤덮은 담쟁이덩굴이 있었어. 바람이 시원하게 불 때면 담쟁이 이파리가 흔들리며 반짝반짝 빛을 낸단다. 옆으로는 너희들이 줄지어 서있었지. 아름드리 자란 다섯 그루의 너희를 지나면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었고,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드는 단풍나무도 있었지. 그리고 장미 넝쿨과 철쭉 길을 지나, 다시 너희들이 아파트 빈 벽에 나란히 서서 반겨줬단다. 또한, 그 옆에 내 코를 자극하는 라일락 나무도 있었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뒤에 너희가 서있는 길을 걸으며, 느껴지는 청량한 공기는 아이들이 더 좋아했어. 나무 그늘에 날리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크게 심호흡하게 만들었단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언덕을 힘들게 올랐지. 방금 전까지 헉헉 소리를 내며, 짜증을 내던 아이들은 액자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어. 두 아이들은 시합하듯이 단숨에 달려가, 라일락 나무에서 엄마가 오는지 보고 있다가 내가 담쟁이덩굴 아래에 나타나면 다시 현관이 있는 통로에 숨어 버렸어.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은 항상 똑같은 자리에 숨지만, 엄마인 난 늘 모른 척 깜짝 놀라는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되었단다.


모든 계절을 그렇게 아이들과 돌아오는 길에는 액자 같은 문을 통해 너희가 있는 작은 숲을 걸었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나무를 참 좋아했어. 남이섬에서 봤던 메타세쿼이아 나무숲과 담양 죽림원 근처에서 봤던 메타세쿼이아 나무 길을 잊지 않고 있거든. 곧게 뻗은 수형과 머리빗처럼 촘촘히 달린 가는 이파리들은 손을 뻗어 만져보면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몰라. 가을이 되면 열매가 달리는데, 떨어진 열매에서 나는 너의 향기는 콧속으로 들어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지.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작은 숲이 없어졌단다.

너무 자라 버린 나무가 문제가 많았나 보더구나. 사실은 나무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사람들이 사는 것에 지장을 주었던 거였지. 저층은 일조량이 문제였고, 전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나무 자르기로 주민회의에서 결정했어.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너희들의 보금자리인 작은 숲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단다. 나무 그늘은 사라지고 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길로 바뀌었어. 너희들이 있던 자리에는 잘린 그루터기만 남아 있단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선택을 한단다. 매번 선택이라는 걸 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결국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리게 되는 일이겠지. 아무리 신중하게 몇 번이고 많은 계산을 하고 선택하더라도 포기한 걸 아쉬워하게 되는 것 같아. 늘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해서 말이야. 그래서 좋은 선택은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렸단다. 어쩜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비밀 아닌 비밀이겠지.


피곤하게 선택 같은 건, 하지 않고 살고 싶지만 말이야. 때론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도 하지, 점심메뉴를 마치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것 같지만, 사실 선택이 귀찮아서 이기도 하잖아. 너희들이 사라진 것도 어떤 이유로 벌어진 선택이었겠지. 이제 와서 보니, 사진이라도 남겨둘걸 아쉽기만 하단다. 얼마 전에 보니, 모과나무는 잘린 그루터기에서 작은 싹이 여러 개 올라왔더구나. 사람들은 나무가 사라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닌가 봐.


그래도 말이야, 너희가 아이들 추억에 고맙게도 남아주었다는 거야. 아직도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작은 액자 속 좁은 그 길을 선택한단다. 그러면서 들려주지. 너희들이 있던 시간을 말이야. 여름엔 시원했던 나무 그늘과 가을이면 담쟁이가 물들어 열매가 달리던 걸 말이야. 내가 사라진 너희들을 잊어버릴 쯤에 . '절대 잊지 마세요!'라고 귀띔하듯이 당부를 한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알고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단다.


오늘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이가 '엄마 오늘도 숲길로 갈까?'하며 작은 손가락으로 액자 문을 가리키더구나. 나는 웃으며 "그래" 하고 대답했어. 그러자, 순식간에 문 속으로 빨려 들듯이 아이는 사라졌단다.

너희 나무들은 사라지고 장미덩굴과 철쭉이 그 자리에 남았지만, 그 길 끝에 웃고 있는 아이가 귀여운 라일락 꽃나무처럼 서서 엄마를 기다려 준단다. 고맙게도 말이야. 아이들이 내 키보다 커지고 나면 사라진 너희처럼 떠날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돌아올 때는 내가 든든한 나무가 되어 줘야겠지? 숲길에 잘린 나무들의 그루터기를 볼 때마다, 엄마라는 나무로 아이들 버팀목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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