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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로 삶 Apr 17. 2024

어머니와 꽃구경

오늘의 발견_362일전

제목: 어머니와 꽃구경


해당화로 유명하다는 강진 미륵사에 갔는데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고 몽우리만 가득했다. 

일주일 후에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절을 구경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 산이 벚꽃인 곳을 지나오게 되었다. 

고향은 여행과 달리 더 자주 올 수 있기에 날씨와 상황이 어긋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좋은 거 같다. 


어머니는 미륵사 초입에서 다리가 아프다며 일주문 앞에 앉더니 다녀오라고 하신다. 

이제 어머니는 어디를 가도 온전히 즐기지 못하신다. 다리가 아프고, 체력이 금새 떨어진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나들이는 항상 부족하다. 

약해진 체력으로 좋은 곳을 가도 구석구석 자세하게 보지 못한다. 

걷기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고, 최대한 차로 움직인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걷고, 어머니에게 보조를 맞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좋은 구경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약한 몸을 이끌고 우리와 함께한다. 

마음은 밭에 가 있으면서 몸은 쉬고 싶으면서 말이다. 

이런 마음들로 나들이는 부족한 거 투성인데 좋은 여행이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소중해질 수 있다.

친정엄마와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천천히 나이 들고 병들고 연약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슬픔도 천천히 스며듦을 느낀다. 

이런 슬픔이 절망스럽지 않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내가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올해 어머니를 보면 좋고 나쁨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건강이 일상을 흩트리면서 자신감도 떨어지신거 같고, 집 앞에 밭만 벌고 싶다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계신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더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것을 본인이 더 잘 아는 거 같다.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진 몸이 아깝지 않은지 마지막까지 다 소진하려는 마음이 읽힌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어머니는 한없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흩날리는 벚꽃처럼 연약하여 위태로워보이면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면 아름답다 느끼면서 마음이 아린다.

어머니와 꽃구경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벚꽃잎은 바람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떨어질 때가 되어서 떨어진 것이다.

너무나 연약해서 다 찢어져 꽃잎 홀로 떨어지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드럽게 바닥에 도착한다.


벚꽃이 만발하던 4월의 봄날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연약해진 시어머니와 꽃구경을 갔다. 

나에게 벚꽃은 이 두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꽃잎은 떨어지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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