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파멸보다 몰락의 길을 걸을 때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정확한 보폭으로 우주 만물을 밀고 당긴다.
여름내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던 화초들이 부쩍
낮아진 기온 탓에 잔뜩 움츠려 맥을 못 추길래
서둘러 하나둘씩 온실 안으로 끌어들여놓고 연탄난로에 불을 지폈다.
꽃들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며칠을 어리둥절, 정신 못 차리고 시름 대더니 차차 온실 안 기온에 적응이 되었는지 다시 싱싱한 꽃대들을 밀어 올린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시간의 다스림 속에 구속되어 있기에 소리 없는 시간의 호명을 용케도 알아듣고 생멸한다. 보이지 않게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또 그렇게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조차 가물하긴 하지만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각으로도 알 수 없지만, 홀로 존재하며 스스로 유지해 나가는 자명성이 있어서 마치 신과 같다"는 글귀가 생각나서 혼자 고개를 끄덕거려 본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던 삶이었는데, 돌아보니 해는 자오선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인간이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았다는 건 멸滅의 시간 속으로 접어들었다는 것,
아직은 '이깟 찬공기쯤이야' 생각하면서도
머지않아 온실 속 화초들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손
길을 요할 때가 곧 올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일까,
어느새 내 손에도 뜨개바늘이 쥐어져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나는 아직도 내 생의 안락과 평온만을 쫒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코 한 코, 바늘에 실을 걸어 담요를 짜면서 내 삶에 구멍 난 곳은 어딘지도 함께 살펴본다.
며칠 밤낮, 머리를 처박고 앉아있던 결과, 담요 하나가 완성되었다. 알록달록 환한 색 담요로 시들어가는 몸 덮어주면 덜 추레해 보일라나?
이것저것,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 산만해지는 요즘이다. 아마도 폭설 탓일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