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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의 파편들

by 수우미양가


황구



초복 전날

어느 기업의 사원이 달리는 차량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막 길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데 도로 중앙선을 베고 황구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머리와 앞다리는

북쪽으로 향하여 가지런히 모아져 있고

뒷다리는 하늘을 향해 들려있다

조금 전까지 온몸에 양분을 공급해 주던

붉고 하얗고 누런 속에 것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비린내가 흥건했다


죽어서야 쏟아져 나오는

생의 응축된 절망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위에서 누르고 아래서 치받는

강한 힘의 압력을, 팽창을 견디지 못한 채

풍선처럼 펑 터져버린


절망과 분노 각종 기관들 위로

경운기가 지나가고

승용차가 지나가고 덤프트럭이 지나갔다


일주일 열흘이 지나고

황구가 누워있던 자리 누런 털 몇 개

미련처럼 달라붙어 속도의 바람을 견뎌내고 있었다


황구를 먹어버린 도로,

번들번들 윤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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