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낸 길을 따라 먼지들이
화장대에 가라앉는 오후야
당신의 화장대는
다종의 화장품 샘플들로 풍성도 했었군
샘플이 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빛으로 채워진 무대는 없을 테니
다만 그림자로 빛나기를
어떤 색을 바른다 해도
그림자는 언제나 같은 색조고
색조들로 만발한 봄이 온다 해도
그림자는 어두워 선명하겠지
그렇게 꽃과 나무들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
샘플들이 풍성도 해서
당신의 얼굴을 지키고 있었던가
내가 물려받은 구석진 유산
그 오래고 그늘진 가구 위에 당신은
샘플을 모아다 바르며
그럭저럭 주름이 져 가고
나는 당신을 얻어 바르며
해지는 오후의 그림자 쪽으로
기울어 왔네
이제 봄은 세포들마다 스며들고
당신에게 가기 위한 오랜 걸음들을 따라
일어서는 연두색 나무들
그 그늘 아래서 나는
열매 같은 노래를 불러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