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일영 Nov 18. 2022

아내의 화장대



 

빛이 낸 길을 따라 먼지들이 

화장대에 가라앉는 오후야

당신의 화장대는

다종의 화장품 샘플들로 풍성도 했었군


샘플이 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빛으로 채워진 무대는 없을 테니

다만 그림자로 빛나기를

어떤 색을 바른다 해도 

그림자는 언제나 같은 색조고


색조들로 만발한 봄이 온다 해도

그림자는 어두워 선명하겠지

그렇게 꽃과 나무들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

샘플들이 풍성도 해서

당신의 얼굴을 지키고 있었던가


내가 물려받은 구석진 유산

그 오래고 그늘진 가구 위에 당신은

샘플을 모아다 바르며

그럭저럭 주름이 져 가고

나는 당신을 얻어 바르며 

해지는 오후의 그림자 쪽으로 

기울어 왔네


이제 봄은 세포들마다 스며들고

당신에게 가기 위한 오랜 걸음들을 따라

일어서는 연두색 나무들

그 그늘 아래서 나는 

열매 같은 노래를 불러 보고 싶어

이전 07화 지나가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