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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영 Nov 18. 2022

지나가는 사람




아직 말이 듬성한 딸과

오래 앓은 기침으로 핼쑥해진 아내가 

식당 창가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저녁을 먹고 있다


깁스를 한 어린 것은

돈가스를 얌전히도 받아먹으며

무슨 말인가를 조곤조곤 건넨다


꿈속에서 꿈 밖을 보듯

아련하고 먼 두 사람의 저녁 시간

소리가 건너오지 못할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나는 어설프게 서 있다


나는 어쩌다 사랑하는 이들을 만들고 말았을까

내 아비는 내가 내 딸만큼 어렸을 때

안타까운 얼굴로 떠나가고 말았지

내 어린 손을 잡은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마지막 한마디를 찾아

말들의 늪을 아직 헤매고 있는지도 

내가 지상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저렇겠지

딸은 저같이 어린 것을 앉혀 놓고

도란도란 저녁을 먹고 있을라나

홀로 가득 차는 방에 앉아 

TV를 켜 놓은 채

라면을 후루룩거리고 있을라나


그때에도 나는 

지금처럼 아련하고 멀게

살아 있느라 아름답고 안타까운 것들을

멀찍이 바라다보고 있을라나


내 몫의 시간들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사람처럼 지나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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