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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이 좋아 일하다 말고 산책이나 나갔습니다

by 작가 정용하 Ma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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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이 좋으면 온몸에 긍정 세포가 돋아나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야 기나긴 겨울이 물러갔다고 실감했다. 날이 풀리자 요즘 산책 코스로 자주 찾고 있는 곳은 경의선 숲길이었다. 최근까지 맹렬한 추위로 거닐 생각조차 못하다가 3월이 들어서자마자 한 번 걷고는 마음이 홀라당 빼앗겼다. 그 뒤로 매일같이 그 길을 걷고 있는데 같은 코스여도 늘 새롭고, 힘찬 기운을 안겨다 주었다. 그건 따사로운 날씨가 큰 몫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봄 기운을 되찾아갈수록 점점 더 많은 인파가 산책로로 쏟아졌다. 그들의 표정이 너나 할 것 없이 밝음을 띠고 있어 이는 마치 날씨가 아니라 경의선 숲길의 마력이 우리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공덕에 온 지 다섯 달 만에 새로운 일터의 포근함을 느꼈다. 이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물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해진 날씨만큼이나 내 주머니 사정도 '따땃'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기적과 같은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마 그런 급상승 그래프는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3월 들어 4개 업체를 신규 계약하면서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건 변덕스러웠던 내 일상 루틴이 고착화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4개의 사업아이템으로 어떻게든 승부 보기로 결정하고 매일같이 정해진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조금씩 성과를 늘려 간다면 나는 확고한 루틴으로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상을 이어가며 월 400만원 이상 수익을 내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목표이다.



공덕역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의선 숲길은 대흥역, 서강대를 지나 연남동 가좌역까지 이어져 있다. 뒤로는 효창공원역 부근 주민센터까지 닿아 있다. 총 6.3km의 꽤나 긴 공원이다. 나는 보통 서강대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그 길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 각종 술집과 고기집을 보면 갑자기 술 한 잔이 땡기기도 했다. 오후 5시 무렵만 돼도 거리에는 온통 삼겹살 구이 냄새로 진동했다. 그 향긋한 냄새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약 이른 허기가 닥쳐오면 그날 저녁은 영락없이 고기를 먹는 것이다. 요즘 술을 줄이고 있어 그 시간대 경의선 숲길 산책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 참새가 어떻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저녁나절 그곳을 거닐게 되면 나는 곧장 삼겹살 집으로 직진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식당이 즐비한 곳이었다. 언제 한 번 여자친구와 한 곳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자신감으로만 홀로서기 하는 거라면 나는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 새로운 업체가 계약되고 돈이 연달아 들어오다 보면 자신감이 하늘 위를 날아 다니지만, 업체 재연장이 안 되고 조금이라도 지지부진한 것 같으면 금세 기세가 꺾이고 의기소침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건 이렇게 하면 언젠가 잘될 것이란 확신에 가까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옳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분명 성과를 볼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 과정이 때로 들뜨고 때로 힘든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저 인내하고 인내하여 일상을 지킬 뿐이다. 그래도 한두 달 전보다 단단한 안정감이 생겼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안한 수익 구조에 우려스럽고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이것도 내 스스로 이겨내야 함을 알고 있다.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홀로서기 하다 한계를 넘어선 바닥 끝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경의선 숲길은 보통 점심 먹고 나서는 산책 코스이고, 오후 4시쯤에는 사무실 근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마찬가지로 매번 같은 코스를 밟는데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사실 산책을 할 때 주위 풍경을 둘러보면서 걷지 않았다. 몸만 밖에 있지, 정신은 여전히 사무실에 두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일 생각이나 생존 문제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산책로 끝 반환점을 돌고 있었다. 오후 코스는 아파트 단지를 빙 둘러오는 것이기 때문에 경의선 숲길처럼 다채로운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도 한창 쌀쌀했던 겨울이 지나가 따스히 스며드는 봄기운에 힘을 얻고 있다. 그것만으로 행복에 겹다.



최근에도 나는 내 능력을 의심하는 순간이 많다. 직장인 부업으로썬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 돼주었지만 막상 '원잡'으로 온전한 돈벌이를 하려 하니 내가 목표한 금액을 벌 수 있는 수익 창출 수단이 맞는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른 아이템이 없는지 생각을 짜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블로그'와 '글쓰기'밖에 없다는 결론에 부딪힌다. 어떻게든 그것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렇다고 직장인 투잡이나 다 때려치우고 '단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느냐, 그건 결코 아니다. 나는 나를 알기에 '나의 것'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를 내야 했다. 어차피 직장 들어가도 얌전히 버틸 인물이 아니었다. 또 내 것 하고 싶다고 뛰쳐나올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남는 것이 더 간절하고, 배수진 치듯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지금의 생활에서 금전적 안정감을 불러일으킨 뒤 결혼까지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의 능력은 이미 확실한 가능성을 보였어야 한다. 그에 한참 미치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괴롭고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후 산책의 마무리를 종종 붕어빵으로 하기도 했다.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2월엔 이틀에 한 번 꼴로 붕어빵을 사먹었다. 손을 벌벌 떨면서도 뜨거운 붕어빵을 호호 불며 먹는 그 맛이란. 먹자마자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온기가 안쪽에서부터 퍼졌다. 한파에 더욱 찾게 되는 마음은 나나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날씨가 추울수록 붕어빵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졌다. 10개 이상씩 구매해가는 손님이 앞에 2명만 껴도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나는 꼭 먹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어떻게든 기다려서 먹고 말았다. 보통 3개밖에 사지 않다 보니 그 행복이 오래 가지 않았지만 먹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날씨가 풀리면서 그 감동이 점차 시들해졌다. 이제는 어쩌다 한 번 사먹는 주기로 바뀌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심지어 더위가 찾아오면 붕어빵 집은 한동안 영업을 중단하다 가을 때쯤 돌아오겠지. 붕어빵 계절이 다시 찾아오면 나는 지금 일터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 그때까진 금전적 안정감을 어느 정도 만들어야 할 텐데. 더 열심히 하자. 산책은 항상 고민으로 시작했다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내가 하는 블로그 마케팅 대행 일이 어느 정도 실력만 있고 꾸준히 한다면 성과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매달 3개 업체씩만 신규 계약하면 반년 만에 15개 이상 증가시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달이 1~20만원을 늘려 적어도 1년 뒤엔 지금보다 150만원 이상 더 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미빛 미래를 그리고 있으면 금방 기분이 풀어지다가도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날마다 투정만 부리고 있으면 뭐하겠는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일상을 끈기 있게 유지시키는 것뿐인 걸.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정해진 일상을 꿋꿋이 밟아나간다.



p.s. 이 글을 쓰다 말고 또 산책하러 나갔다.



-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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