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겨울, A는 회사를 그만뒀다.
옆에서 봤을 때는 전혀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고액의 연봉과 좋은 동료, 좋은 팀장이 옆에 있었다. 일도 많지 않았다. 회사는 A에게 시간을 줄 테니 봄(인센티브 나오는 달)까지는 다녀보고 생각해 보자고 퇴사를 만류했다. 그래도 A의 마음은 변함없었다.
A가 처음 힘들다고 말을 했을 때,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뚜렷하게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면 더 다녀보면서 생각해 보자고 설득도 했었다. 그러나 새로운 회사로 입사한 이후에 점점 말라 가는 A를 보니 그 고통이 눈으로 보여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A는 월급 루팡이 되는 자신이 싫다고 했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 고통스럽다 했다. 문제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굳이 노력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상황이라 했다.
한 직장에서 공채로 들어가 10여 년 넘게 일도 하고, 힘든 육아도 다 병행하며 악착같이 직장 생활한 A였다. 그냥 힘들어서 그만 둘 친구가 아닌데, 이직한 지 3개월도 안된 직장에서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냐만, 이 선택이 A의 경력에 흠이 될까 봐 다른 직장이라도 구하고 그만두는 것은 어떻겠냐고 얘기도 해봤다. A의 생각은 단호했다. 자신이 하는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했다고 했다. 그만두기로 마음먹는 순간 마음이 정말 편했다고 했다.
나는 A의 결정을 존중했지만, 좋은 기회를 너무 빨리 내려놓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최인아 대표님의 글을 보고 A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만둔 것임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양심적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존심을 지키라는 것이 뜻이다. 모자란 능력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한 번뿐인 인생을 주위에 해를 끼치며 지내는 것, 결국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것이 괜찮으냐고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거다.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일하는 법' 최인아 대표 칼럼 중
돈과 권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료의 인정과 신뢰, 성취감 없는 직장 생활은 나의 존엄성을 해치는 고통이 된다. 언젠가 조직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 일을 해낼 능력과 의지가 없는 순간이 올 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 A처럼 스스로 그만 둘 용기를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