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식빵, 제빵 수업의 첫걸음

식빵 한 덩이에 담긴 시간과 정성

by 홍천밴드

제빵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빵은 보통 비상 식빵이다. ‘비상’이라는 이름은 정말 말 그대로 긴급 상황을 뜻한다. 일반 반죽 온도가 27도라면, 비상 식빵은 30도까지 올려 반죽기를 오래 돌려 믹싱을 많이 한다. 그래서 1차 발효는 15~30분 정도로 짧다. 전체 공정을 빠르게 압축한 비상 스트레이트법을 사용하는데, 시간이 없는데도 빵을 빨리 내야 하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 하는 방법인 셈이다.


모든 제빵 반죽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식빵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 하는 일은 늘 서툴기 마련이다. 선생님 시범을 볼 때는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다가도, 막상 내가 하려고 하면 “어… 다음이 뭐였지?” 하며 기억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 보잘것없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기억을 더듬어 빵을 만든다. 반죽기가 열심히 일하고 나면 둥글리기를 해야 한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처음 둥글리기를 하면 내 손은 내 손이 아니다. 동그랗고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만지면 만질수록 반죽 얼굴은 점점 못생겨진다. 반죽은 손을 많이 타면 탈수록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교수님 손에서는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이미 완벽한 둥글리기가 끝나 있는데, 그 조용한 손 기술을 보면 감탄만 나온다.


제빵이 제과와 가장 다른 점은 발효 시간이다. 모든 빵에는 최소 두 번의 발효가 필요하다. 먼저 전체 반죽을 크게 둥글려서 1차 발효를 한다. 보통 발효기에 넣고 약 50분 정도 기다린다. 그다음 반죽을 원하는 무게로 분할해 다시 둥글린 뒤, 실온에서 최소 10분 이상 중간 발효를 한다. 특히 식빵류는 충분한 중간 발효가 필수다. 그 후 성형을 하고 2차 발효를 30분 정도 진행한다. 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발효는 길고도 여러 번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제과 실기시험은 2시간이면 끝나지만, 제빵 시험은 3시간 반이나 걸린다. 제빵은 정말 기다림의 미학이다. 초반에 그래서 교육생들이 2차 발효를 해야 하는 데 발효기가 아니라 오븐에 넣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도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식빵은 보통 3절 접기를 하고 돌돌 말아 틀에 3개의 성형된 반죽을 넣으면, 발효가 진행되며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삼봉 모양의 식빵이 된다. 가운데가 봉긋하게 올라간 식빵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만든 반죽을 가운데에 넣어야 한다.


예전에는 “식빵은 원래 저런 모양이구나~” 하고 별생각 없이 먹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그 안에 담긴 노고가 다르게 보인다. 특히 프랜차이즈가 아닌 작은 동네 빵집의 식빵은 대부분 정말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것이다. 수많은 새벽을 반죽과 함께 보냈을 누군가의 노동이 얼마나 숭고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정말, 그 많은 새벽잠을 포기하면서 만들어냈을까?


마지막으로 성형된 반죽을 팬틀에 넣어 오븐에 굽고 나면 드디어 식빵이 완성된다. 식빵은 기본 과정이라 시험 문제로 나오면 쉬워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어렵다. 삼봉 모양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어설프면 바로 불합격이기 때문이다. 결국 연습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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