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빵, 망해도 맛있는 빵

단팥빵은 그냥 빵이 아니다

by 홍천밴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 중 하나인 단팥빵을 만들었다. 제빵 실기 시험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품목이라 익숙한 듯하면서도 만들 때마다 정신이 없다. 보통 1차 발효 시간에는 설거지를 하거나 잠깐 쉴 여유가 있지만, 단팥빵은 그럴 틈이 없다. 그 시간에 단팥앙금을 하나씩 그램을 재서 동그랗게 빚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1차 발효가 끝나면 그 팥앙금을 넣어 성형을 한다. 모양을 잡은 뒤에는 목란으로 가운데를 눌러 구멍을 내는데, 분명히 크게 눌렀다고 생각해도 막상 오븐에서 나오면 막혀 있는 경우가 많다. 팥을 너무 위로 밀어 넣으면 열리면서 쏠리기도 하고, 2차 발효 시간이 부족하면 막힐 확률이 크다고 한다. 아무튼 ‘예쁜 단팥빵’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체적인 모양도 중요하다.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동그란 모양이 흐트러지고 비대칭으로 나온다. 결국 세심한 손길이 전부인데, 뭐든 그렇긴 하지만 단팥빵은 유독 더 그렇다. 성형이 끝나면 곧바로 2차 발효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성형 후 2차 발효를 하지 않은 채 바로 오븐에 넣어버렸고,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다. 금세 꺼내긴 했지만 이미 빵은 망한 뒤였다. 발효라는 과정을 몸으로 완전히 익히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나 자신을 믿을 만큼 손에 익는 날이 오겠지. 완벽하진 않았지만, 단팥빵은 여전히 맛있었다.


요즘 빵집의 단팥빵을 보면 예전처럼 가운데 구멍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반죽 기술이 정교하지 않아 굽는 동안 팥이 터져 나오는 일을 막기 위해 증기가 빠질 구멍을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 그럴 필요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통통한 모양이 디자인적으로 더 예쁘고 고급스럽기도 하다. 요즘은 단팥만 넣지 않고 크림을 더해 풍미를 높인 제품도 흔하다.


단팥빵은 단순한 달콤한 간식을 넘어 동서양의 식문화가 만난 상징 같은 빵이다. 그 시작은 1875년 일본에서 ‘앙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지 시대, 서양식 제빵 기술이 일본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빵을 짜고 거친 군용 식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던 중 제빵사 기무라 야스베이가 일본 전통의 단팥소를 활용해 부드럽고 달콤한 새로운 빵을 만들었고, 이 빵이 메이지 천황에게 헌상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이를 계기로 빵이라는 음식이 일본에 자연스럽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 후 단팥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에 전해졌고, 한국의 제빵사들은 입맛에 맞게 다시 변형했다. 일본보다 한국의 단팥빵은 조금 더 두껍고 쫄깃하며 단맛이 진하다. 팥소도 더 굵직하게 살아 있다. 그 결과 한국식 단팥빵은 찐빵의 팥소와 서양식 제빵 기술이 결합된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1970~80년대에는 학교 앞 빵집의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천연발효종과 버터를 활용한 ‘앙버터’ 등 한층 고급스러운 형태로 발전했다.


제빵을 배울수록 빵의 역사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단팥빵은 정말 그냥 단팥빵이 아니다. 작은 하나의 빵 안에 시대와 문화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빵 위에 기름칠을 하려면 뜨거울 때 해야 한다. 조금 식은 다음 발랐더니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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