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연애를 하며 배운 것들
20대에는 줄곧 나로서 온전해지고 단단해져야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는데, 혼자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단단해져서 중심 잡힌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혼자 잘 지낸다'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과 적당한 교류를 하면서 혼자여도, 함께여도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로서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절대 혼자서는 온전해질 수 없다.
혼자여서 괜찮기 위해서는 정말 지독하게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즉, 혼자여서 괜찮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촘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와 먹고 싶은데 애인은 멀리 산다고 하면 동네 친구나 가족을 불러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pc방에 가고 싶을 때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누군가의 집에서 늦게까지 놀고 자고 싶을 때 재워줄 수 있는 사람, 혼자는 좀 그렇고 같이 러닝 하러, 헬스 하러 부르면 나갈 수 있는 사람, 취미를 함께 공유하는 동호회 사람들, 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동료 등.
20대에는 그런 것들을 뒷전으로 하고, 나 혼자 단단해져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조금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을 줬다. 나 혼자 단단해져 보겠다던 다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애인이 된 상대에게 최선을 다 했다. 아니 올인을 했다. 혹은 좋아하는 감정이 크지도 않은데 사람들을 사귀었다. 그러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금세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마음이 단단해지긴커녕 갈수록 힘이 들었다.
내 가슴 깊숙이 깔려 있는 어린 시절의 외로움으로 쉴 새 없이 연애했고, 연애를 쉬는 기간엔 나 홀로, 나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집에 처박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만 주구장창 읽기도 했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밥을 먹고 산책하고 마음을 추스리기도 했다. 동굴 속으로 점점 들어갈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혼자여서 잘 지내는 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다 20대 후반즈음 개인상담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그 연애는 나에게 많은 성장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가장 내가 안정감을 느꼈던 부분을 다섯 가지 정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항상 전화로 미리 알려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던 것.
2. 어디서 말하기 부끄러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읽고도 큰 반응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던 것.
3. 나를 항상 1순위로 생각하던 것.
4. 이성인 친구가 거의 없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지 않고 자기계발하는 걸 좋아했던 것.
5. 갈등이 있을 때 본인이 이해가지 않는 것들도 먼저 들어주고 대화로 차분하게 해결했던 것.
이곳저곳에서 충분한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사는 삶 속에는 불안함이 없더라. 내가 아니더라도 주변 관계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더라. 자주 보지는 않더라도 가벼운 관계가 아닌 깊고 진한 그런 관계들 말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좋은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혼자서 우뚝 서는 것이 어려워 좌절만 하다가 나도 누군가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그런 연애였다. 그를 만나면서 ‘혼자 잘 지내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과 적당히 교류하면서 혼자여도, 함께여도 잘 지내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존재다.
고마운 존재 나의 x, 행복하기를 바란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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