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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둥둥 Aug 12. 2024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자

좋은 모습만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

지난달엔 친구 부부와 애인과 함께 넷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신기하게 나와 친구는 고등학생 때 닭갈비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고, 애인과 친구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알게 된 사이였다. 좋은 사람을 소개 시켜준 친구와 남편과도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자리를 마련했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넷은 1차에서 고기를 먹고 볼링 한 게임을 하면서 소화를 시킨 뒤 2차로 이자카야에 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친구 부부는 어떻게 하다가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그 둘도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얘기를 듣다 보니 환한 미소가 이쁜 친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리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귄 지 1년이 되는 시기까지 친구의 남편은(그 당시는 남자친구) 친구에게 낯을 가렸다고 한다. 낯을 가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편하게 본인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애인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 애인과 이야기를 했다. 애인은 나에게 자신은 친구같이 편안한 연애를 좋아한다며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힘들 때는 힘든 것도 말하고 서로 기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이 스쳤다.


'아직 만난 지 한 달 조금 넘게 만났을뿐인데, 얼만큼 편해져야 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가?'

'아직까지 내 본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걸까?'

'편하게 생각 안 했으면 같이 운동하고 땀범벅이 된 몰골을 보여주지도 못했을 텐데'


생각이 길어질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감이 안 왔다. 전에 3년 가까이 만났던 사람과 만나면서는 내 감정을 말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는 상대의 눈치를 많이 봤었다. 이야기를 피하려 하고 다른 얘기로 돌리는 사람에게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애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편하게 물어본다. 그가 먼저 편하게 물어보기 때문에 나도 큰 어려움 없이 물어보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도 하나하나씩 기회가 될 때마다 양파 껍질 까듯 이야기해주고 있다.


도대체 애인이 원하는 '편안한 관계'는 뭘까? 솔직해지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는지 조금 더 생각해 봤다. 생각을 해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애인에게 한강에 있는 수영장을 가자고 얘기를 했다가 그날 당일 일정이나 동선이 멀고 혼자 운전하는 애인이 힘들어할까 봐 가자고 더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물놀이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너무 가고 싶었지만 애인을 배려한답시고 내 욕구를 말하지 않았었다. 꼭 수영하러 가지 않고 다른 데이트를 해도 같이만 있다면 충분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것을 말하지 않았었음을 애인에게 고백하니, 이런 이야기도 다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느꼈던 어려움이나 상처들, 그냥 뭐든 시시콜콜한 것도 다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뭐랄까, 애인은 나의 긍정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다 안아줄 준비가 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심이 된다.


아! 이런 거구나.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외적으로 편하게 대하고 못난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서운하거나 힘들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아주 작은 부분들을 말할 수 있는 것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몇 년 전 개인상담을 하면서 나는 거절 및 방치의 두려움으로 가까운 사람(특히 연인)에게 이런 부정적 감정들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 이후 내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서툰 부분이 있었다.


부정적 감정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밑바닥까지 보여주고도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나도 상대의 진짜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물론 싸우기도 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대해 봐야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자.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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