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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07. 2022

나는 채식을 왜 하는 걸까?

영양사의 채식이야기

영양사가 채식을 한다고?


흔히들 '영양사'라 하면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권장하는 사람이 떠오를 것 입니다. 저도 얼마전까지는 한끼 식단에 동물성, 식물성 음식을 골고루 챙겨먹던 사람 중 하나였지요.


심지어 회사를 다닐 땐 '비건' 선언을 한 직장 동료를 유별나다고 생각하며 함께 사회생활하기 힘든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순전히 입맛때문에?


사실 전 흰 우유를 잘 마시지 못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흰우유 마시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뼈건강과 성장에 좋다는 이유로 억지로 먹었지만 특유의 비린맛은 성인이 된 지금도 너무 싫어합니다.


나름 건강을 위해서 1리터짜리 우유 한 팩을 일주일동안 챙겨 먹던 것이 이제는 멸균우유 한 두팩으로 바뀌었고, 틈틈이 칼슘제와 비타민D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으로 대체를 하고 있죠. 우유가 골다공증 예방과 뼈건강에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유제품을 챙겨 먹는 다는 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억지로 챙겨 먹었던 유제품


제 입맛과는 달리 유제품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치즈, 버터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입가에 맴도는 특유의 비린내와 느끼함이 너무도 싫어 한두입 먹고는 모두 남편에게 양보합니다. 급기야 요즘엔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떼 대신 두유로 만든 라떼를 마시고 있죠.


영양소 균형을 생각해서 억지로 챙겨 먹었던 유제품들이 나이가 들 수록 더 멀어진다고 할까? 누가 옆에서 챙겨주지 않는 이상 먼저 찾아서 먹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고기 반찬은 싫어요


달걀도 마찬가지입니다. 덜 익은 반숙 노른자에서 나는 비린내는 왜 이렇게 싫은 건지? 그동안은 완전식품, 달걀의 영양소가 좋다는 건 알고 있어서 하루에 한 두개는 챙겨먹으려고 애썼는데. 채소 싫어 하는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이는 것처럼, 저는 제 자신에게 고기 반찬을 억지로 먹이고 있었죠.


결국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릇의 달걀 비린내와 씽크대에 남아 있는 냄새가 너무 싫어서 이제는 혼밥을 할 때면 달걀을 잘 먹지 않게 됐습니다. 그외에도 햄, 소시지는 특히 가공육 좋아하는 남편에게 주고, 저는 소고기나 돼지고기 정도를 남편 먹을 때 옆에서 몇 점만 먹거나 거의 먹지 않게 되더라고요.



열무만 넣은 비빔국수, 고기 안 넣은 우거지국에 밥 말아 버섯구이나 채소 볶음 위주로 먹고, 나물을 넣은 채소 비빔밥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에요. 입맛을 따라가다 보면 저의 밥상은 거의 채식 위주의 밥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땐 저의 채식지향적인 입맛을 잘 알지 못 했는데 퇴사 후 혼자 식사를 하고, 식생활의 중심이 저로 맞춰지면서 언제부턴가 밥상 위에는 채소 반찬이 그득하게 됐죠.




채식지향적인 입맛


생각해보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해주셨던 시금치나물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달큰한 시금치 나물에 참기름, 깨소금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났던 맛있는 밥반찬.



저의 친정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으셨는데 채소아삭아삭하면서 신선한, 산뜻한 맛, 채소 자체의 달달한 맛 등 제가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맛있는 맛을 채소에서 경험하면서 제 입맛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비건 별다를 게 있나?


하루 한 끼, 채식을 한다지만 딱히 저의 밥상은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먹어 왔던 아침 겸 브런치가 결국 채식이었거든요. 그냥저냥 집에 있는 나물을 밥에 슥슥 비벼 한 끼 떼울 때도 있지만 영양소 균형에 맞춰서 식물성 단백질을 보충하고, 근사한 한 끼를 차려내다 보면 나름 괜찮은 비건 레시피가 탄생하곤 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할머니들이 드셨던 옛날 시골밥상이 진정한 비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리밥에 각종 나물과 채소를 넣어 만든 비빔밥과 두부, 호박 넣은 된장찌개 하나면 그만한 비건 레시피가 없었죠. 다만 저염으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균형을 맞춘다면 말이죠.




대중화 되는 채식


요즘은 여러 이유로 해서 채식대중화 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혹은 동물권이나 지구 환경을 위해서라도 채식을 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죠. 예전엔 채식이 곧 풀만 먹는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오보, 락토, 페스코, 플레시블 같은 유연한 채식주의 덕분에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제 입맛을 찾아가면서 시작하게 된 하루 한 끼, 비건가족들 누구도 아닌 하루 한 끼는 제가 먹고 싶은 채식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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