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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정 Jul 03. 2024

한 번만 눈 질끈 감았더라면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83

한 번만 눈 질끈 감았더라


풍덩!

첨벙첨벙!

통영에 여름이 오면 동네 아이들은

우르르 바닷가로 달려가

난닝구와 빤스를 입은 채로

다 같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나만 빼고.


나 혼자만 선창가쪼그리고 앉아

동무들이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휘젓고 노는 것을 종일 보고만 있다가

밥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한 번만 용기 내서 뛰어들었다면

나도 물에 뜬다는 걸 알았을 텐데.
겁 많은 통영 가시내*.


삼십 대에 수영을 배우겠다고

두 번이나 강습을 끊었다.

아무리 팔다리를 휘저어도 전진이 안 됐다.
이도 얼마 안 된 수영강사가

이런 사람은 살다 처음 본다며 나를 포기했다.

나도 오기 있는 사람이라

남아서 한 시간씩 더 연습하다가

신장에 무리가 와서 신우염으로

2주 동안 입원을 했다.

내 마음 열정을 몸이 따라주질 못한다.
두 번째 도전으로 또 신우염이 걸렸을 때
아무래도 나의 뻣뻣함이

수중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이번 생에서 수영은 그만 내려놓았다.


또, 다시 태어나야 하나?
나도 호텔수영장에서 우아하게

수영 한번 해보고 싶다.
젖은 수영복 차림으로 물에서 나와

썬베드에 다리 꼬고 누워

하아, 좋구나 하며

스파클링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다.

아마도 다음 생에.


*가시내: 계집아이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이번생에는튜브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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