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스스로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절대 보지 않는 이상한 성격인지 이상한 고집이 있는 나는 뒤늦게 유행에 편승했다. 무려 스스로 구미가 당겨 난리가 났던 그 프로그램을 보고야 만 것이다. 이미 엄마는 마음을 울리는 그의 노래에 빠진 지 오래였다. 나도 함께 쇼파에 앉았다. 만인의 연인이자 히어로라 불리는 그의 무대를 정주행 하다 그가 부른 노사연 님의 ‘바램’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풀어 내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노랫말처럼, 우리는 조금씩 익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몰라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던 때가 있었고,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좋았다 싶고, 이제 좀 알겠다 싶어 편안하고 익숙해질 때쯤에는 어쩌면, 노랫말처럼 많이 익었을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호기롭던, 어느 것 하나 세월의 냄새가 깊이 배지 않아 푸르던 시절이 있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 말하는 시절, 모두에게는 그 청춘이 있었다. 계절의 계절도, 인생의 계절도 결국에는 흘러가고 지나가는 것이다. 언제 여름이 왔는지, 언제 겨울이 되었는지 무뎌져 지낼 만큼 우리는 부지런히 살아왔고, 삶으로 자신의 계절을 지나왔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제 몫들을 해오며 살아가다 보니 어깨가 무거워졌고 몸이 버거워졌다. 그저 매일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며 살아온 것이 다일 수도 있을 텐데, 언제 시간이 지나버린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흘러온 세월이 남긴 것들을 다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이 참 고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건강이든, 허무함이든, 어떤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계속 뚜벅뚜벅 걸어가야겠지. 조금 느려질지는 몰라도 멈추는 법은 없는 게 삶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