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이 예쁘니까, 죽지 마
세상에는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감정 스펙트럼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넓다. 다른 사람들이 기쁨을 느낄 때 환희를 느끼고, 슬픔을 느낄 때 절망을 느낀다. 어릴 적 나는 참고 참다가 기어이 죽고 싶을 때면 컴퍼스 바늘로 책장 뒷면을 긁어 내렸다. 그렇게 한 번을 기록하고 나면 뭔가 다음 한 번은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참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서른 네 개의 흔적을 셌다.
그다지 불행한 가정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헌신적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하기에는 모욕적일 만큼 나에게 모든 것을 쏟았다. 그런데도, 다른 아이들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몇몇 언행들을 난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그 말을 뱉던 그 어조와 눈빛이 아직도 가끔 자기 전에 돌아온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이후로 예민하다는 사실을 주변에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피곤한 사람들이다. 내가 얼마나 예민한지를 알게 되면, 그들에게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다. 슬픈 영화는 피한다. 연가시를 보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 감정의 질량이 나에게 너무 버겁고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번방의 선물은 얼씬도 안 했다. ‘슬픈’이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일단 피하고 본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내 내 소원은 아프지 않게 죽는 거였다. 매일 밤 눈을 감으며 이대로 눈을 뜨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세상은 매일 내게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내라고 들이밀었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공부가 좋았다. 진심으로 좋아했다. 뭔가를 새로 배우면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 안에서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내 세계를 구성하고 건설하면서 나는 내 자존감을 찾았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 온 세상이 찬란해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난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 내 삶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고, 미래를 기대했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 순간 삐끗하니 2년만에, 그 모든 게 돌아온다. 나는 다시금 고등학교 때의 나다. 우는 게 취미라고 말하면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때 그 사람이다. 그 감정의 수렁은 바래지도, 얕아지지도 않았다.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건 내 평생 없어지지 않겠구나. 내가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구나.
그러자니 억울했다. 도대체 왜, 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난 이미 널 만나서 그게 괜찮은 것도 아니고, 내가 견딜 수 있어서 그것들을 견딘 게 아님을 깨달아버렸다. 우는 게 내 취미였던 것도 아니고, 내가 우울을 즐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온전히 행복해 보니, 이제야 그게 보인다. 그냥 괜찮다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걸 알아버렸는데, 앞으로 난 이걸 어떻게 견디나.
그래서 널 붙잡고 울었다. 난 왜 이런 거냐고. 그러니까 네가 그런다. 아름다운 것을 많이 만들라고 예민하게 만들어진 거란다. 앞으로 예쁜 것을 엄청 많이 만들 거란다. 예민한 사람이라, 예쁜 것을 볼 수 있고 또 만들 수 있는 거라 했다. 그래서 나에게, 오늘은 하늘이 너무 예쁘니까, 달이 너무 예쁘니까, 죽지 말라 했다. 그게 왜 그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살아야겠다. 살아서, 예쁜 것들을 엄청 많이 만들고 죽어야겠다. 안 그러면 억울하잖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