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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un 25. 2023

내가 웃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땐 그랬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길

김성라 작가의 ‘고사리 가방’이라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TV에서 고사리를 꺾는 장면이 나오면 넋을 잃고 바라본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고사리를 좋아하지 않고 그저 봄만 되면 고사리를 꺾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으며 뜬금없이 고사리 이야기를 하는 건 며칠 전 고사리를 꺾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꿈에선 매년 고사리를 채집했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산비탈을 옮겨 다니며 신나게 고사리를 꺾었다. 손에서 뚝 고사리가 끊어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그래서 고사리는 끊는다고도 표현하나 보다.      


나의 채집 욕망은 부모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빠는 한시도 낚시라는 취미를 놓아본 적이 없고 엄마는 봄이 되면 낚시터 근처에서 쑥, 달래, 두릅, 머위, 제피잎을 딴다. 매년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이젠 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올해도 엄마는 나에게 엄청난 양의 쑥과 달래를 건넸다. 덕분에 봄만 되면 나의 밥상은 호사스러워진다.      


첫 채집은 이웃집 정아 언니네의 무화과나무에서 몰래 무화과를 따 먹은 일이다. 무화과나무는 근처에만 가도 잎과 열매에서 향기가 진동했고 열매를 딴 꼭지에서는 하얀 즙이 맺혔다.      


그 당시 정아 언니네 엄마는 아침마다 언니를 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아야~얏!!! 아줌마의 고함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매번 정아 언니 대신 내가 잠에서 깼다. 그 소리에도 깨지 않는 정아 언니에게 나는 정말이지 아줌마만큼이나 화를 냈다. ‘언니야.. 제발 좀 한 번에 일어나 줘..’      


마트에서 파는 무화과를 볼 때면 아줌마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가끔 떠오른다. 아줌마의 목청은 여전할까.

   

최근의 채집은 보리수나무에서 몰래 보리수 열매 두 알을 딴 것이다. 새빨간 보리수 열매는 상상했던 것과 달리 표면이 거칠했고 껍데기가 얇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무를 것만 같아 잠자는 작은 새를 손안에 감싸준 것처럼 조심히 집으로 들고 왔다.    


  

흐르는 물에 보리수 열매를 헹구고 조심스레 앞니로 살짝 깨물어 보았다. 떨고 신맛이 입안으로 몰려들어서 퉤퉤 입을 헹구고 접시 위에 열매를 던져버렸다. 올해의 채집으로 보리수 열매는 생으로 먹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누군가의 말처럼 이 나이에도 무언가를 새로 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짜릿한 일이다. 훗날의 내가 보리수 열매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그땐 그랬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보리수 열매를 담아둔다.      



올해도 고사리를 꺾지 못했고 보리수 열매는 기대와는 달랐지만, 지금은 6월 수국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만개한 수국 근처에서 ‘꽃을 꺾는 사람 손가락 잘림’ 벽보를 보고 웃었다. 아니! 수국을 꺾는 사람이 있다고?! 진짜 너무하다고 생각하며 아아.. 나도 이제 몰래 채집하는 일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바라본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웃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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