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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ul 04. 2023

여행자의 기분

여행자들의 붐비는 거리를 걸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집에서 걸어서 1시간 거리 내에 있는 스타벅스는 20개나 되지만 그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를 애용했었다. 특별히 시설이 깨끗하거나 뷰가 뛰어나고 조용한 곳은 아니지만, 그곳에 있을 때 마음이 제일 편안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곧잘 폐점된다. 그곳은 1층만 운영하는 테이크 아웃 형태의 스타벅스로 리모델링되었다. 이로써 백수 생활 동안 집 외에 가장 편안했던 외부의 공간이 사라졌다.    

  

호텔 안에 입점한 스타벅스를 가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호텔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약간 쭈뼛했지만,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진한 호텔 냄새를 맡으며 들어선 스타벅스는 원래 가던 곳보다 아담하고 조용했고 바다가 보이는 뷰도 멋져서 원래 다니던 곳보다 더 내 취향에 더 부합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목소리는 모두 여행자의 목소리다. 갑자기 홀로 이방인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원래 이 동네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데도 한없이 외로워졌다. 외로움에 압사당할 것 같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커피는 반도 마시지 못했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독히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이라 요약될 수 있겠다. 그래도 외로움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간 얼굴을 한 사람이 아니라 가끔 외로움에 치를 떠는 아둔한 내가 더 좋다.    

  

밖은 어느새 따뜻한 바람이 서늘한 바람으로 바뀌어있었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많지만, 관광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표정을 볼 수가 있다. 제일 즐거워 보이는 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모래사장에 퍼질러 앉아 작은 장난감 삽으로 모래를 퍼내는 것만으로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들은 그 순간을 만끽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표정은 다채롭다. 행복한 듯 웃으면서도 무료해 보이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빛에 불행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할머니들도 즐겁다.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70년, 80년의 세월을 살아낸 그들을 대단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어린이일 때 들었던 ‘노인을 공경하자.’라는 표어는 이런 뜻이었구나. 그들의 웃음은 아이들의 웃음과 닮아있다. 돌고 돌아 그들은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데 전염병 때문은 아니고(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는데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생긴 당연한 결과이다.) 낮에는 햇빛에 노출되기 싫고 저녁에는 아직 쌀쌀한 바람을 막기 위함이고 사실은 나의 사는 모습을 아직은 드러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해 보이고 무료해 보이고 외로워 보이기도하는 여행자들이 붐비는 거리를 걸으며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었다. 아마 내 표정 또한 그들과 같이 행복해 보이고 무료해 보이고 외로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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