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을 짓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업은 정신과 육체의 활동으로 동작이 일어난 뒤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력이 되어 남아 있다가 어떤 시기에 ‘과보를 받아라!’ 하며 나타나는 것이다.‘저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전생에 좋은 업을 많이 쌓아서 금생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 바로 업에 관한 이야기다.
료안지는 언제나 인기폭발.
업은 좋은 업도 있지만 나쁜 업도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것은 나쁜 업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내가 말을 내뱉는 순간, 듣는 사람이 그것을 듣고 상황이 종료되는 것은 정신과 육체 활동의 종료이고 이 종료 뒤에도 마일리지 쌓이듯 뭔가 팍팍 쌓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업이라는 것이다. 업을 짓는 것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이 삼업을 나누어서 몸은 세 가지, 입은 네 가지, 마음은 열 가지 업을 지을 수 있다고 보는데 마음의 열 가지 업을 또 나누어 열 가지 악과 열 가지 선으로 나눈다. 그렇다면 왜 업을 짓지 말아야 하느냐. 아까도 말했듯이 업은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순간에 과보를 받아라! 라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선악업의 행위에 따라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
800년 된 분재, 다이도쿠지.
업에 관해 불교의 깨묵 유튜브 강좌를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 겉으론꾹 참으면서 속으론 어떤 사람을욕하는 것도 업이 되는지 말이다. 어떤 사람이 잘 모르면서 잘 알고 있다는 듯 내 앞에서 뽐을 내고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웃기고 있네, 어우. 작작 좀 해라. 어디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있지? 자, 나는 분명 저 사람을 속으로 욕하고 있다. (글이라서 정제해서 썼는데 엄청 험한 생각을 하며 속으로 욕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악업의 마일리지가 뾰롱~하고 올라갔을까? 그렇다 치면 앞에선 웃으면서 속으로 꾹 참는 행위 역시 삼악도*에 떨어질 수 있는 고속열차를 타는 것인데 이것마저 허용이 안 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업은 한 번 생각했다고 해서 쌓이는 것이 아니다. 업은 훈습이라고 하여 습관이 몸에 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의 깨묵에서도 업이 결과로 나타나기까지는 원인(因)이 푹~ 익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앞에선 웃으면서 속으로 욕하는 행위를 매일 하고 있으면 그것은 업이 될 수 있다.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의 행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업이 될 수 없다. ‘어? 살인도 한 번의 행위인데 업이 안 되나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내가 했다. 그러나 살인이라는 것은 행동에 옮겨지기까지 많은 생각이 쌓여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엄청난 악업 마일리지를 축적하게 되는 행위이다.
다이도쿠지
업에 대해 알게 되니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이 저절로 일어난다. 어라, 그런데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을 쌓은 것 같다. 여전히 싫고 미워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쩌지! 나는 윤회가 확정된 건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인간계가 아니라 축생계 이런 데에 떨어지는 거 아닌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강아지부터 다시 시작인가? 아님 개미? 개미도 축생계인가?
악업에 대한 괴로움이 무르익을 때 즈음 교토에 있는 다이도쿠지(大德寺)에 가게 됐다. 이곳에 가보면 부처님을 만나기보단 조금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선종 사찰이기 때문이다. 선(禪)은 원어로 디아나(dhyana)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한자로 옮기면서 선나(禪那)라고 표기했다. 달마스님은 마음이 담벼락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밖에 있는 것을 다 끊어버리고 안으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곳에 이르는 상태말이다. 말이 쉽지, 그 경지가 어떠한 세계인지 그려지지 않는다.
다이도쿠지
교토의 선종 사찰에는 담벼락 안에 돌과 같은 무생물로 정원을 꾸민 곳이 많다. 아무래도 선정에 든 상태를 정원으로 구현해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곳에서 수행하면 내 안에 있는 불성을 깨닫고 성불할 수 있을까. 교토 선종사찰 여행의 팁을 하나 드리자면, 카레산스이 정원을 보러 대부분 료안지(龍安寺)나 긴카쿠지(銀閣寺)에 가는데 이곳에 가면 마음이 더 지치게 돼 있다. 그곳은 관광객들에게 너무 유명해서 뭔가 보고 온 듯한 느낌보다는 사람에 치인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토에 간다면 다이도쿠지에 가보시길. 사람도 많이 없고 료안지에 가면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을 하나 볼 수 있지만 다이도쿠지엔 여기에도 저기에도 모두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을 꾸며놔서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편안하게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다이도쿠지
고요한 곳에 앉아서 아이들과 물 없이 꾸민 다이도쿠지의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을 둘러보았다. 감탄과 감상을 뒤로하고 나와보니 다리가 모기에 잔뜩 물려있다. 긴 바지를 입고 갈 것을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닌 내 잘못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다리에 울긋불긋해져서 절에서 나오는데 그 모습을 보니 참 재밌었다. 나의 불성을 깨달아 보자고 하며 간 곳에서 모기에 물린 다리에 정신이 팔려 버렸으니 말이다. 아, 나는 역시 내가 깨달아서 성불하는 자력신앙은 안될 것 같다. 아미타불에게 귀의해서 극락에 가는 타력신앙이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미타부처님, 저 같은 어리석은 중생도 극락에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여기에서 또 질문이 있다. 살인자와 같은 나쁜 사람들도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는가? 만약 이 사람이 진실로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악업을 쌓은 사람은 악업 때문에 그 인연이 아미타불과 닿기 힘들다고 한다. 그동안 쌓은 악업이 습관이 되어 매일 재생되고 있으니 아미타불을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염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생애에 좋은 마음으로 선업을 열심히 쌓아 아미타불과 인연을 맺어야 극락에 갈 수 있다. 그러니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도록 매일 노력하자.
나무아미타불.
다이도쿠지
* 삼악도(三惡道), 죽은 뒤에 가게 되는 곳 중에 가장 나쁜 곳.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