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고 거듭해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의 일이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시간에 아이의 학업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의외의 답을 해주셨다. 수학의 경우, 아이가 매우 잘하니 심화 문제를 좀 풀어보는 게 좋겠다고 하신 것이다. 세상에! 수학과는 담쌓고 지내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태어났다니! 이게 웬 떡이냐!
정말 즐거운 나머지, EBS 만점왕 한 권만 풀던 우리 아이는 그 뒤로 만점왕 수학 플러스도 풀게 되었다. 생각보다 잘한다. 오~ 그렇다면 그 어렵다는 최상위 수학에 도전해 봐? 아이는 초반의 문제는 정말 잘 풀었다. 그러나 높은 단계의 문제들은 거의 다 틀렸다. 그리고 매우 괴로워했다.
아이가 푼 문제 중에 정말 재밌던 답이 생각난다. 인절미와 백설기, 시루떡과 무지개떡 사진이 주어진 후, 우리 조상들은 옛날에 떡을 만들어서 이웃과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 떡의 모양과 같은 육면체의 특징을 쓰라는 문제였다. 우리 아이는 정말 당당하게! “인절미는 고소하고 쫄깃한 떡”이라고 써놨다. 음~ 우리 딸이 쓴 답이 확실하군! 우리 아이는 인절미를 정말 좋아하는데 인절미라는 단어에 홀려서 답을 신나게 써놓은 것이 눈에 선했다.
답을 보자마자 너무 웃겨서 아이의 허락을 받은 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는 기자분이 문제가 좋지 않다고 지적하신다. 그렇다. 문제가 좋지 않다. 떡을 먹는 풍습과 육면체의 특징은 사실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하나로 묶어서 아이에게 던져놓으니 육면체의 특징을 아는지 확인하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내용엔 떡 잔치만 벌어진 것이다. 중요한 단서와 아닌 것을 찾아내는 훈련을 시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문제는 아니다.
물론 좋은 문제도 많다. 두세 번 더 생각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도 많아서 문제를 붙들고 열심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무리였을까? 아이는 최상위의 치읓만 들어도 울려고 준비했다. 그래서 중단. 그렇게 겨울이 지나 2학년이 되었다.
연산은 우여곡절 끝에, 받아 올림과 받아 내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단원은 그래도 해볼 만한지 아이가 신나게 푼다. 그렇다고 욕심을 내자니 마음이 안 내킨다. 잘하는 아이라면 조금 더 해도 되겠지만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 선행은커녕 자기 학년에 맞는 심화 문제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습을 더 많이 하기로 했다. 왜냐? 공자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논어 학이편 가장 첫 문장에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나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때때로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석을 살펴보면 익힌다는 것은 거듭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새가 날기 위해서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듯 말이다. 때때로는 경우에 따라서 가끔이라는 뜻의 부사다. 그러니 때때로라는 한국어를 써버리면 배우고 가끔 익히면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때 시’라는 한자를 옮기려다 보니 잘못 해석한 것 같은데 때때로라고 하지 말고 계속해서 또는 거듭해서라고 쓰는 것이 맞다. 아무튼, 공자님도 배운 다음에 거듭해서 익히라고 하셨으니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복습해 보자고 결의했다!
복습할 때는 문제 풀이에만 집중하지 않고 개념을 여러 번 설명해 준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개념을 처음 가르치듯 복습할 때마다 똑같이 여러 번 가르쳐줬다. 학교에서 이미 개념 설명은 들은 아이는 나와 함께 EBS 만점왕을 풀 때 한 번 더 듣고, 만점왕 수학 플러스를 풀 때 또 듣고, 개념 유형 문제집을 풀 때 다시 한번 들었다. 그렇게 개념을 정리하고 나서 기본 문제는 나와 풀고 실전 문제와 단원 마무리 문제는 혼자 푼 뒤, 스스로 채점하고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나에게 설명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해도 정리된 개념으로 설명이 또렷하게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2학년 분류하기 단원의 경우,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는 ‘분류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사람에 따라서 결과가 다를 수 있으므로 누가 분류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어가 좀 어려우면 아이의 언어로 조금 더 쉽게 말하되, ‘누가 분류해도 결과가 같도록 분류 기준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정도는 나와야 한다. 우리 아이는 분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이유를 쓰라는 서술형 문제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예쁜 머리띠를 분류하면 나는 아닌데?라고 말할 수 있음이라고 써놨다. ‘결과가 같다’라는 포인트는 또 빼먹은 것이다. 그러니 개념이 술술 나오도록 여러 번 반복해 주는 것이 좋다.
연산의 경우, 구몬 B단계를 한 번 풀고 동일한 B단계를 다시 받아서 연습 중이다. 하루에 3~5장씩 푸는데 이제는 연산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아이의 연산 자신감도 쑥쑥 자라났다. 그렇게 열심히 날갯짓을 한 결과! 아이는 수학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수학에 흥미를 느낄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실마리를 잡고 수학 도둑이나 어린이 수학 동아도 읽혔다. 독해력이 좀 늘고 나서는 똥꼬 발랄 고영희와 같은 책도 읽게 했다. 그랬더니, 수학을 대하는 태도가 더 달라졌다. 그동안은 내가 너무 몰아대서 수학 공부를 매우 싫어했다면 이제는 풀고 나서 조금 뿌듯한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아이가 언제 즈음 수학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수학만큼은 나와 분리된 상태로 공부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아이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오답을 정리하는 과정을 하도록 전적으로 맡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다음 날 있을 단원평가를 위해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왜 틀렸는지 확인한 후 나한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요즘 국어랑 통합시간보다 수학 시간이 제일 좋더라?"
세. 상. 에! 수학 시간이 제일 좋다니! 충격이었다! 분명히 학기 초만 해도 연산 싫어서 막 울던 아이었는데! 수학 문제집만 보면 도망가려고 했는데! 수학 시간이 제일 좋다니! 내가 개념만 설명해주고 문제풀이에서는 빠졌더니 아이는 더 훨훨 날아 올랐다! 멋지다! 우리 딸!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엄청난 후행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2학년 여름방학 때, 1학년 1년의 과정을 다시 복습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 같아도 돌아가면 헷갈리거나 어설프게 아는 개념이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조금 더 기초를 탄탄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2학년 여름방학에는 구구단을 완벽히 숙달해야 하는 것이 맞다. 물론 그것도 할 것이다. 그러나 1학년에서 기른 암산력을 암반과 같이 튼튼하게 해 두고 구구단도 2학년 겨울방학까지는 튼튼하게 조립해 놔야 3학년에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두 자릿수 곱하기를 할 때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후행을 감행한다! 우리 아이가 과학고나 영재고에 갈 리가 없기 때문에 선행은 필요 없다. 정말로 필요없다. 내가 열심히 밀어봤자 아이를 지치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과하게 개입해야하는 모든 것을 차단한다! 아이가 지쳐서 울면 나도 싫다. 더 이상 어금니 꽉 깨물고 가르치기도 싫다. 그래서 우리 집에 선행은 없다! 거듭해서 익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