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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는 차이가 크다.

- 목표가 있는 삶이 얼마나 알찬지 몰라요.

by 재하

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엄마는 분명 내가 꿈이 많았다고 하는데 내 기억은 다르다. 하루는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 오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통역사라고 썼다. 통역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 뒤로도 이런 일은 반복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시기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하라는 대로 했다.


중학교에 가서 드디어 꿈을 정했다. 그 뒤로 내 꿈은 십 년간 바뀐 적이 없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만들었다. 나는 혼자서 개척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어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혼자 아등바등거렸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던 걸까. 어른들은 '넌 뭐든 잘하니까'라며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담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꿈을 정하면 그때그때 도움을 주자고 마음먹었다.

우리 아이 최초의 꿈은 고양이었다. 다섯 살 때 자기는 고양이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귀여운 발상이다. 그 뒤엔 화가도 된다고 했다가 디자이너도 된다고 했다가 유튜버를 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앞의 꿈들은 하루 이틀 말하고 말았는데 유튜브는 어찌나 힘이 큰지 당장 하고 싶다고 난리였다. 그래서 실험 삼아 동영상을 찍어봤는데 아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입을 꾹 다물고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네가 무슨 유튜브를 한다고 그러냐 떠들어댔다.


시간이 이 년이나 흘렀다. 또 유튜버 타령이다. 그래서 그냥 개설해 줬다. 아이를 키울 때 나의 철칙이 있는데 힘들다고 포기해도 무조건 1년 이상은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두려움도 극복하지 못할까 봐 그랬다. 유튜브? 무조건 1년 한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매일 쇼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계정을 만든 지 두 달가량 됐는데 올릴 영상이 없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집 앞 개천에 나가서 꽃과 풀을 관찰해서라도 영상을 올렸다. 우리 사전에 포기란 없다! 100일까지는 쇼츠를 매일 올리고 그 뒤엔 긴 호흡의 동영상을 만들기로 우리끼리 계획을 짰다.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아이가 엄청 유명한 유튜버가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이는 구독자 34명에도 매우 만족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구독자는 적은데 조회수 2천 가까이 되는 영상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대만족 했다. 욕구가 좀 채워지니 아이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듯 보였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진로 찾기 질문지를 펼쳐서 아이랑 풀어본 날이었다. 질문에 답을 쓰다 보니, 정말 의외의 직업이 나왔다. 아이는 의사, 동물학자, 시인이 꿈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동물학자가 가장 되고 싶다고 동그라미를 쳐놨다.


그날부터 아이는 자신이 동물학자가 되기 위해서 피그미 다람쥐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구가 키우고 있는데 엄청 귀엽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피그미 다람쥐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놀고 자며 다람쥐 집, 쳇바퀴, 먹이를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돈까지 조사를 하라고 했다. 아이는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서 8절 도화지 한 장에 다람쥐 조사보고서를 만들어왔다.

그 사이에 피그미 다람쥐 키우는 아이 엄마와 작전을 짜서 다람쥐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친구를 통해 듣도록 했다. 손에 올리면 똥을 엄청 싼다던지, 다람쥐는 야행성 동물이어서 밤새 쳇바퀴를 돌리는데 그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다든지, 징그러운 밀웜을 손으로 잡아서 입에 넣어줘야 된다던지의 정보를 폭탄으로 퍼부었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것으로 압박을 했다. 엄마랑 아빠는 돈을 주지 않을 테니 네가 용돈을 모아서 사라고 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던 아이는 용돈 모으기를 포기하고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피그미 다람쥐 키우기는 포기했지만 동물학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에그박사 책이 새롭게 나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사서 여러 번 읽었고 최재천의 동물대탐험도 열심히 읽었다. 생명과학 수업도 열심히 듣고 제인 구달과 템플 그랜딘의 책도 섭렵했다.

매년 벨라가 집에 가는지 가서 확인하는데, 여태 안 가고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최재천 교수님의 양심이라는 책을 읽다가 실험실에서 쥐를 죽이면서 겪은 저자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제주남방 큰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앞바다에 돌려보낸 일화와 벨루가 벨라가 아직 돌아가지 못한 이야기도 알게 됐다.


양심이라는 책은 아이에게 너무 어려워서 내가 쉬운 단어로 풀어서 책을 읽어줬다. 제주남방 큰 돌고래를 얘기해 주자 갑자기 소리친다. "혹시 제돌이? 나 걔 알아!" 얼마 전에 사줬던 동물대탐험 책에서 읽었다고 좋아한다. 첫째 아들이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부르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돌이 보러 제주도에 가보자고 했다. 애들이 좋아서 난리다.


실험실 쥐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이가 벽을 긁으며 자기는 동물학자가 되면 안 되겠다는 얘기를 한다. 매일 스무 마리씩 죽어가는 실험실 쥐 이야기에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얘기해 줬다. 최재천 교수님도 그래서 동물을 죽이는 학자가 아니라 살리는 학자가 되기로 하셨다고, 그래서 제돌이도 풀어주신 거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이가 다시 눈을 반짝이며 선언했다. 동물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좋아할 테니까, 앞으로 집에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벨라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도 얘기했다.


때마침 유엔에 관한 책을 읽다가 생명다양성과 관련된 단체가 있다는 설명을 보게 됐다. 아이는 자기도 뭔가 하고 싶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최재천 교수님이 대표로 계신 생명다양성재단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그곳에 아이 이름으로 가입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후원금은 아이가 오천 원을 내면 내가 오천 원을 지원해 주는 형식으로 내보기로 했다. 매일 먹는 아이스크림을 이틀에 한 번 먹거나, 엄마의 심부름을 열심히 해서 용돈을 모아야 하겠지만 아이는 매우 신이 난 듯 보였다. (최재천 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할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를 위한 강의를 올해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땅끝이라도 찾아가서 아이와 함께 듣겠습니다.)

아이의 꿈이 동물학자라고 하면 “그거 금방 또 바뀔 텐데”라고 어른들이 말한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방향을 정해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데 벌써부터 꺾어버리려는 것인지 말이다. 아이의 꿈은 바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동물학자가 되겠다고 노력한 것들은 아이의 삶에 튼튼한 영양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방향성 있는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도움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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