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 하루아침에 뚝딱 생기진 않아요
아이와 책을 빌리러 학교 도서관에 간 날이었다. 아이가 책을 고르는 동안 뒤에서 따라 걷고 있었는데 대뜸 뒤를 돌아보더니 묻는다.
“(손가락으로 열하일기 책을 가리키며) 엄마, 열하일기 재밌어?”
“어, 진짜 재밌어. 네가 읽기에 좀 어려워서 그렇지, 얘기해주고 싶은 게 많아.”
“치, 엄마만 재밌겠지.”
그리고는 뚜벅뚜벅 걸어서 전래동화책 전시대로 가버렸다. 그동안 내가 읽던 책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던 건지. 아이의 뾰로통한 음성으로 들으니 아찔해진다. 난 재밌게 읽었는데 왜 그러지?
지난 학기에 타 대학 대학원생들과 공부를 하게 됐는데 5주 차 즈음에 선정된 텍스트가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항상 발췌된 부분만 읽었던지라,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에 열심히 읽었는데 딸이 유심히 봤었나 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딸이 또 묻는다.
“(손가락으로 책을 가리키며) 엄마, 난중일기는 무슨 내용이야?”
“아! 난중일기가 뭔지 모르는구나! 네가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님이 쓴 일기야!”
그리곤 딸에게 말해줬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난중일기도 알고 열하일기도 아는 건 대단한 거라고 말이다. 내 생각엔 두 권 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읽기엔 너어~~~ 무 어려운 책이라, 이름만 알아도 된다. 특히 연암의 책은 어느 정도 지식을 쌓고 읽어야 한다. 조선과 청나라, 특히 화이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졸다가 덮어버릴 수 있다.
나는 열하일기의 존재를 언제 알았더라. 수능 준비를 하면서 처음 접했으니 고등학생 때일 것이다. 그런데 딸이 벌써 열하일기를 궁금해하다니, 갑자기 의욕이 생긴다. 심양에서 베이징, 베이징에서 열하로 이어지는 연암 답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딸이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하일기를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으니 빠르면 중학생, 늦으면 고등학생 때 즈음일 듯하다.
난중일기 코스도 좋다. 난중일기는 무인이 쓴 글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담백하다. 그래서 열하일기보다는 더 이른 나이에 읽어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조선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있어야 독해할 수 있다. 그래도 이순신이 싸운 바다를 만나는 답사 정도는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에 가능할 듯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기 마지막에 학술답사를 떠나게 됐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따라오겠다는 것을 말리고 말려서, 답사의 마지막 날 오후에 아빠랑 같이 나를 찾아오기로 했다. 아이는 엄마가 없어도 열심히 자습해서 받아쓰기 100점을 맞았다고,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도 열심히 다녀왔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빠가 잊어버릴까 봐, 공항에 가기 전에 먹을 빵도 사놓고 선크림과 모자도 열심히 챙긴 듯 보였다. 고작 이틀 못 봤는데도 아이가 이렇게 의젓하게 컸나 싶어서 기분이 묘했다.
베이징에서 재회한 딸은 한껏 들떠 보였다. 그 넓은 자금성을 오전 내내 걸어 다니는데도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자금성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기억난다. 특히나 청나라 건륭제가 만든 자기 키만 한 시계를 보며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청나라 황제가 왜 시계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 설명해 줬더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옛날에 달력이 어떤 의미였는지, 시간과 시각의 개념이 왜 생겼는지 설명해 주고, 예전에는 시간을 2시간 단위로 끊어서 이야기했다면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시간과 분을 알게 돼 지금과 같이 정확한 시간을 알게 됐다는 얘기도 해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갑자기 눈을 반짝인다.
“시간 하고 시각을 내가 잘 알지. 히히. 학교에서 배운 거잖아~”
자금성을 걸으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새롭게 이름을 지으면 되지, 경복궁에 자기 생활공간을 새롭게 지으면서 자금성에 있는 건물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냐고 말이다. 건청궁, 곤녕합 이런 이름들이 나는 자금성 건물 이름인 줄 몰랐다가 이제야 알았다고 엄청나게 투덜댔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한다. 건청궁 현판도 직접 안 쓰고 중국 사람이 쓴 글자를 집자해서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떠들면서 가는데 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한다.
“엄마랑 지나갔던 그 커다란 기와집? 거기 말이지? 나 경복궁 갈래”
지금은 날이 너무 더워서, 가을이 오면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에 가 보기로 했다.
딸이 나를 따라온 것은 학술답사뿐만이 아니다. 나는 작년부터 교육청 학부모 생태 동아리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번 교육이 주말에 잡혔다. 엄마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 할머니 집에 잠깐 가 있으라는 말에 딸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난리가 났다. 그 바람에 결국 나를 따라왔다. 다행히도 주말에 교육이 진행돼서 그런지 다른 회원들의 자녀들도 많이 온 날이었다.
그날 아이는 나뭇잎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배우고 애벌레와 곤충들도 관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숲해설가가 내준 퀴즈에 열심히 답을 외쳐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나뭇잎을 주워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교육을 함께 받은 뒤로는 아이가 벌레를 보아도 징그럽다거나 도망가지 않게 됐다. 또, 길가에 핀 꽃과 나무, 풀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더 유심히 관찰할 수 있게 됐다.
그 외에도 아이는 나와 남편을 보며 영향받는 것이 많아 보였다. 우리의 취미 덕분에 아이는 클래식 공연장에도 자주 갔고, 꽃장식이 필요해서 내가 대형 꽃꽂이를 할 때마다 옆에서 작은 바구니에 꽃도 꽂아보게 됐다. 아빠는 4개 국어를 할 수 있어서 해외에 나가서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다. 언어는 소통하는 도구라는 것도 알게 됐는지 어느 날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난리였다. 구몬 일본어를 하다가 문법이 나오기 시작해서 중단했는데 아무튼, 저학년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요청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뭐든지 엄마가 짜주는 대로 다니는 로봇이었다. 미술학원도, 피아노 학원도 다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엄마는 서서히 나의 공부에 손을 뗐는데 그때부터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 후 손을 떼어야 했는데 그냥 스르르 빼버리니 뭘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중학교에 갔다가 완전히 망했다. 처음 보는 등수가 성적표에 찍혀있을 때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성적으로 미친 듯이 방황했던 중학생을 겨우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게 됐다. 문제는 중학교 때 기반을 잘 잡지 않아서 내신만 잘 나왔지 모의고사는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성실함으로는 내신 정도만 커버할 수 있지 진짜 실력은 아니다. 뭐든지 계단식으로 쌓아가야 했는데 나에게 중학교 3년의 공백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런지, 딸에게는 어느 순간 엄마가 공부를 도와주지 않게 될 거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엄마가 계속 옆에서 얘기해 봤자 구구단이 저절로 외워지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공부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해 주게 됐다. 엄마가 하는 공부도 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해서 습득하는 것이라는 것을 옆에서 보고 체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루는 학교장재량휴업일 때문에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스터디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세미나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아이는 그곳에서 서울대에서 외교학을 가르치다 정년 하신 교수님과, 소위 말하는 SKY 대학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학력을 쓴 이유는 아이가 진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세미나를 본 아이는 자기가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과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나 보다. 쉬는 시간도 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네 시간의 세미나가 끝난 뒤, 아이는 힘들다며 고기를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먹으며 말했다.
“엄마, 나 대학교 안 갈래. 엄마 공부하는 거 보니까 너무 힘들 것 같아. 근데 왜 엄마 선생님은 칠판에서 가르치지 않고 같이 앉아서 얘기하셔? 그리고 언니와 오빠들이 계속 마음대로 얘기하는데 말하겠다고 손 안 들어도 돼? 화장실 가도 되냐고 선생님한테 왜 허락 안 맡고 그냥 중간에 나가는 거야? 엄청 이상하네~ 근데 엄마는 왜 말을 많이 안 했어?”
아이는 그날의 세미나 이후, 엄마의 공부에 궁금함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내 전공을 물어봤다. 전공이라는 단어도 잘 몰라서 엄마는 대학교 때 무슨 공부를 했냐고,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계속 묻는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기는 동물 학자가 되고 싶은데 그러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물어봤다.
세상에 이러저러한 재밌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알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뒤에 뭔가를 하는 것은 본인이 계획을 세워서 재밌게 헤쳐나갔으면 한다. 문제는 의욕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느 날 뚝딱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엄마와 아빠의 활동을 보여줘야 하는 것 같다. 부모가 열심히 뭔가를 공부하고 현장에서 그것을 확인한 후, 사회에서 활용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서서히 스며들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번엔 이거 해볼래요!라고 얘기하는 순간에 다다르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저학년 때는 국어와 수학을 어느 정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꽤 압박을 하는 중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국어와 수학 공부에만 몰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즈음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편히 마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이가 기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온 힘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내 삶에도 말이다.